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45구의 시체, 그 이유

미국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두 권 <재난, 그 이후> <야망의 시대>
등록 2015-07-15 15:02 수정 2020-05-03 04:28

2005년 8월30일 미국 루이지애나의 메모리얼 병원 간호사는 환자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더운 열기 속을 탈수 상태로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그의 눈에 한 남성 환자가 들어왔다. “도대체 저 남자는 어디서 온 거지?” 메모리얼 병원 내에 있는 자신의 모든 환자를 기억하려고 애쓰던 간호사는 중얼거렸다.

전에 보지 못했던 그 남자는 몸이 젖은 채 투석에 필요한 카테터를 몸에 덜렁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집에 있으면서 투석 치료 기한을 넘긴 남자는 홍수 물을 뚫고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병원 역시 홍수로 폐쇄해야 할 지경이었고,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급히 대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투석이 필요했던 남자 역시 다시 대피해야 했다. 남자는 다른 대피 환자들에 섞여 요트를 타고 병원을 나갔다. 그는 운이 좋았다. 탈출하지 못한 환자가 많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최악의 재해로 기록되었다. 메모리얼 병원이 폐쇄된 10일 뒤 생존자 수색을 위해 병원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예배당과 영안실과 복도, 응급실 등에서 45구의 시체를 보았다. 현장에 있었던 목사는 이렇게 당시를 표현했다. “그야말로 지옥의 모습과도 유사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최선의 치료를 제공’받아 사망한 상태였다. 환자들은 모르핀을 조금씩 투여하는 점적장치를 달고 있었다. 이러한 선택을 한 의사(애너 포)는 인터뷰에서 “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의 힘 닿는 한 모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최선의 치료’를 받은 이들은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이들이었다. 전기가 끊어진 병원에서 기구의 도움 없이 거의 생존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대피 초기 단계에선 ‘위급 환자 먼저’가 원칙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빠져나갈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이들 환자는 구조 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결국 의료진은 최후의 선택을 내렸다. (셰리 핑크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는 메모리얼 병원의 ‘선택’ 과정을 보여주는 데 300페이지를 할애했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댐이 무너져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멸’의 기운을 10년의 세월을 넘어 전달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은 ‘소설’처럼 서술된다. 생동감 있는 전개는 심층 인터뷰의 결과다. 2009년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기사를 보충한 것으로 기사 이후 6년에 걸쳐 500명을 인터뷰했다고 저자는 밝혔다. 책의 2부 300페이지는 사건 이후 사회에서 벌어진 논란과 법정을 중계한다. 책은 2013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거의 동시에 한국에 번역 출간된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도 기자의 리포트가 책이 된 경우다. 2005년부터 8년간 베이징에서 특파원을 지낸 저자가 중국이 ‘야망의 시대’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를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지만 광고판에 ‘럭셔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장장 560페이지에 걸쳐 있다. 2014년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