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평이나 될까 한 방을 안방이라고 했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할머니와 형, 누이 둘 그리고 내가 안방에 모여 잠을 잤다. 누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건넛방에서 지내지만 날이 추워지면 안방으로 옮겨와 지냈다. 건넛방은 나름 신식으로 연탄보일러가 놓여 있었지만 보루쿠(구멍 뚫린 큰 벽돌) 담벼락에 벽지 한 장 바른 방이 따뜻할 리 만무했다. 안방은 낡았고 문풍지 바른 문틈으로 바람이 든다 해도 뜨끈한 구들이 있고 한기를 막아주는 흙벽이 있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안방으로 누이들이 돌아왔고 겨우내 방 안은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요강 옆에 콩나물시루를 둔 이유
타악타악, 새벽녘에 설핏 잠에서 깨면 부엌 아궁이에서 콩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르렁, 가마솥 뚜껑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고, 따악따악, 도마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써는 소리도 들린다. 어미가 식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들이다. 그 불에 식었던 방이 따뜻해지고 다시 스르륵 잠이 들 것도 같지만, 그렇게 잠이 들면 요에 오줌을 지리기 마련이라 두꺼운 솜이불을 밀치고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아랫목에 놓인 요강 앞으로 다가가 오줌을 싼다. 초저녁에 방으로 들인 요강에는 오줌이 한가득 담겨 있다. 할머니는 밤새 서너 번 일어나 오줌을 누었을 것이고, 누이들과 형도 남모르는 어느 새벽에 일어나 오줌을 누고 다시 잠들었을 것이다. 찰랑거리는 요강에 오줌을 누고 나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요강만 사람의 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요강 옆에는 검은 포를 뒤집어쓴 콩나물시루가 나란히 놓여 있다.
콩나물시루를 방으로 들이던 날 할머니는 날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잠들기 전이 한 번 주고, 오줌 싸러 일어날 쩍에 한 번 주고, 아침이 일어나서 한 번 주믄 우리 호용이 크디끼 콩나물이 지러나는 거여.”
비몽사몽간에도 오줌을 누고 나면 콩나물시루에 물 한 바가지 끼얹어주는 것은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이어서 버릇처럼 포를 걷어내고 함지박에 담겨 있는 물 한 바가지를 콩나물에 끼얹어주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요강에 그만한 오줌이 모였다면 할머니와 누이들, 형도 나와 마찬가지로 오줌을 싸고 나서 콩나물시루에 물 한 바가지씩을 끼얹어주고 다시 잠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섯 사람의 마려움이 목마른 콩나물을 밤새 무심히 길러냈다.
신새벽, 퇴창문 밖 마루 위에는 바람에 날려든 잔설이 내려앉았고, 마당 너머 앞산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오줌을 누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었을 때 어미는 조용히 부엌문을 열고 들어와 콩나물 서너 줌을 뽑아들고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형과 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고 할머니만 방 안에 남아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호용아 일어나서 밥 먹고 핵교 가야지. 눈 많이 왔다. 오늘은 걸어가야 헌게 얼릉 일어나야 쓰것다. 핵교 늦어.”
고개를 들어 밥상을 올려다보니 콩나물무침과 콩나물김칫국이 놓여 있다. 어린 입에 마뜩잖아하는 것을 잘 알아선지 내 밥그릇 위에는 달걀프라이가 얹어 있다. 내 입맛은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지금도 여전히 김칫국과 된장국에 달걀프라이를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달걀을 풀어 넣은 국이 아니라 기름에 부친 달걀프라이 말이다.
주면 주는 만큼 자라는장사를 한답시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늙은 어미 한번 보러 갈 새가 없는데 어버이날마저 바쁘다는 핑계를 댈 염치가 없어 밤늦게 고향집을 찾았다. 집에는 할미가 되어버린 어미와 그 어미의 모습과 성정까지 빼다 박은 큰딸이 마주 앉아 깔깔대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역시나, 오줌을 누는 좌변기 옆에 검은 포를 뒤집어쓴 콩나물시루가 우두커니 앉아 오줌을 싸기 위해 화장실을 들락거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줌을 누고 나서 검은 포를 들춰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시루 안에는 콩나물이 ‘웅숭웅숭’ 자라고 있었지만 안방 요강 옆에 자리했던 콩나물과는 다르게 기운도 없어 보였고 콩나물 대가리도 옅은 연둣빛을 띠고 있었다.
콩나물이란 것은 어두운 방에서 단시간에 길러내야 하는 것인데 어미 혼자 물을 준들 얼마나 자주 줄 수 있겠는가. 하룻저녁 두세 번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해도 다섯 식구가 번갈아가며 물을 주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 물을 자주 주면 주는 만큼 자라는 것이 콩나물인지라 노인네 혼자 기르는 콩나물은 더디 자라고 그 시간만큼 어떻게든 빛을 잡아당긴 콩나물대가리는 연둣빛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줌을 누고 시루 앞에 쪼그려 앉아 물 몇 바가지를 끼얹어주고 방으로 돌아와 어미와 누이 앞에 앉았다.
그날 낮에 어미와 누이는 밭에서 난 이런저런 푸성귀와 콩나물을 들고 시장에 다녀왔노라고 말했다.
“야, 엄마가 얼마나 웃긴 줄 아냐. 엄마가 파는 콩나물 1천원어치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보통 콩나물의 4분의 1, 유기농 콩나물의 절반도 안 돼. 사람들이 콩나물을 사가면서 다들 그러는 거야.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아무리 집에서 키운 콩나물이라지만 내가 봐도 양이 너무 적어.”
호남평야 너른 들판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논에는 벼를 심고 그 들판 가장자리 논두렁과 수로변의 맹지 곳곳에는 백태와 서리태, 쥐눈이콩을 심는다. 콩은 물기 없는 자갈밭이건 축축한 진흙밭이건 가리지 않고 어지간하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순하고 강인한 식물이다. 세 알씩, 세 알씩. 한 손에 호미를 들고 다른 손엔 콩 한 줌을 쥔 어미는 며칠간 들판에 나가 콩을 심었을 것이다. 그 콩은 지난해 가을 같은 자리에서 거둬들인 종자들이다. 겨우내 삶아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담그고, 밥에 얹어 먹고, 볶아 콩차를 만들고, 쇠머리찰떡에도 넣어 먹었다. 한말 두말 지고 장에 내다팔면 두둑한 용돈 벌이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실하고 상처가 없는 것들로 골라 모아 논두렁에 다시 심었는데도 남아 콩나물로 길러낸 것이란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떨리는 손으로 콩나물 세 가닥을콩나물 기르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시루에 3분의 1 정도 들어갈 양의 콩을 하루 정도 물에 불리면 콩알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작은 뿌리를 내민다. 이렇게 싹이 트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내고 시루 바닥에 물 먹인 볏짚으로 똬리를 틀어 깔아준 뒤 그 안에 불린 콩을 담는다. (볏짚은 시루 안에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깔아주는 것인데 스폰지 역할을 한다.) 시루가 준비되면 아랫목 구석진 자리에 물이 담긴 함지박을 놓고 시루를 걸칠 수 있는 받침대로 사용할 ‘꼬작’을 가로질러 얹은 뒤 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올린다. 그리고 함지박에 담겨 있는 물을 시시때때로 부어주고 빛 한 줄기 새어들지 않을 만한 검고 두꺼운 천으로 시루를 덮어주면 노랗고 실한 콩나물이 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콩나물 지르는 것이 애린 것 키는 것보담 애려운’ 이유는 수시로 갓난아기 기저귀 갈아주고 젖 물리고 잠재우는 것보다 더 자주 검은 포를 들추고 물을 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함지박에 담긴 물 한 바가지 떠서 시루에 끼얹어주는 행위 자체는 더없이 단순한 일일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정성만으로는 건실하게 길러내기 어려운 것이 콩나물이고 또한 사람일 것이다. 한 사람의 지극정성이 다섯 사람의 무심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날 콩대를 거두고 말려 타작하고 자루에 담아내는 어미의 정성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시루에서 자리는 콩나물에 쏟을 정성 또한 가볍지 않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당에 떨어진 콩 한 알도 허리 숙여 집어들고 콩대를 태울 때도 아직 떨구지 못한 콩알이 없는지 확인해가며 아궁이에 밀어넣는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하니 콩나물시루에 콩을 담는 날부터 오줌이 마렵지 않아도 수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을 테고 밭에 나갔다 돌아와서도, 잠시 외출하고 돌아와서도 수시로 시루에 물 몇 바가지씩을 끼얹어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정성만으로는 실하게 콩나물을 길러내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았을까.
“봄이 콩 심고 여름이 길러 가을 되면 거둬다 말리고 타작혀 잘난 놈 못난 놈 개려 담어서 콩나물로까지 질러낸 것인디 그 돈 1천원이 어디 말이냐. 헐 수 없어서 그 돈 받고 주는 것이지….”
한 줌이나 될까 한 콩나물을 받아든 손님이 너무 적다며 투정 부리듯 어미를 바라보자 콩나물 세 가닥을 떨리는 손으로 빼들어 봉지에 담아준 이야기를 누이가 전할 때 세 사람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하지만 어미의 마음으로는 그간의 수고로움이 콩나물 석 줄기에 담겨 있었으므로 그리도 손이 떨렸을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재료만으로 깊은 맛따로 떨어져 살던 세 가족이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어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일찍 가야 헌담서. 일어나서 밥 먹고 갈 채비 혀라.”
밥상 위에는 콩나물과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 아귀탕이 놓여 있었다. 이만하면 달걀프라이가 없어도 밥은 꿀떡꿀떡 넘어가기 마련이라 눈곱도 떼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밥 얻어먹고 전주로 돌아왔다. 얻어먹은 밥도 고마운데 어미는 두툼한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내 손에 들려줬다. 그 봉지 안에는 콩나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돈으로 치자면 1만원어치는 될 법한 양의 콩나물이었다. 자식에게 주는 것이라 그랬던가. 양은 가늠치 않고 봉지에 꾹꾹 눌러 담아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만큼 넣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수고로움도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봉다리가 미어터지도록 가득.
“뭔 콩나물을 이리 많이 주오?”
“그깟 콩나물이 뭐라고. 가꼬 가서 냉국이나 끓여 먹어. 암것도 ?q지 말고 소금간만 쪼매 허고 마늘이나 쪼매 는 둥 마는 둥….”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콩나물 음식은 냉국이다. 오직 한 가지 재료만으로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식재료는 그리 많지 않은데 콩나물이 그러하다. 깨끗이 씻은 콩나물을 끓는 물에 넣고 뚜껑을 덮어 비린내가 가시면 불을 끄고 소금도 넣는 둥 마는 둥, 마늘도 넣는 둥 마는 둥 해서 차게 식혀 마시면 갈증도 달래고 입맛도 살려준다. 이 콩나물냉국은 맛을 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맛이 없어지는 음식이다. 멸치 육수를 넣어도 맛이 없고, 파를 다져 넣어도 맛이 없고, 조미료를 넣어도 맛이 없다. 개운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니릿한 뒷맛만 남아 입맛을 버린다. 요강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 그렇게 무심히 요리해야 맛있는 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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