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아!”
12월10일 아침 6시. 길고양이 사진가 김하연(44)씨가 집 나간 장자라도 만난 것처럼 ‘길동이’를 불렀다. 이날의 신문배달을 4분의 3쯤 마친 무렵이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 한켠에 자리한 빌라에 신문을 넣고 나오는데 주차된 신문배달 오토바이 옆으로 길동이가 번쩍 나타났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서 홍길동의 이름만 따 길동이라 부른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데, 길동이는 제가 본 고양이 중에 가장 멀리 가장 넓게 다니는 아이예요. 주생활지를 포함해서 반경 200m 범위에서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밥 달라고 찾아와요.” 길동이가 역시나 밥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곧 출근시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어서 여기서 밥을 주는 건 위험하다. 길고양이를 싫어하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건 더 싫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김씨는 “여기는 위험해. 자, 내려가자. 따라와. 알았지? 따라와.” 몇 번씩 다짐하고 뒤를 챙겨보며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갔다. 자주 밥을 주는 셔터가 내려진 슈퍼 앞으로 30m쯤 내려갔다. 길동이가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왔다. 김씨는 우선 이 고양이에게 건사료를 부어주고 길동이를 찾으러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길동이는 찾지 못했다. “아까 그냥 거기서 줄걸. 좀더 안전하게 주고 싶어서 내려오라고 했더니.” 김씨가 차마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길에서 만난 길동이와 만피
김하연씨는 한겨레신문사 봉천지국을 운영한다. 전성기 때의 20% 수준으로 배달 부수가 줄어서 요즘은 배달까지 혼자 다 한다. 아버지가 지국장을 하던 고3 때부터 신문을 배달했다. 게임 전문지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할 때도 신문은 돌렸다. 집안일을 함께 하는 가풍이다. 김씨의 하루는 매일 새벽 1시에 시작한다.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6시간 동안 서울 관악구 행운동·낙성대동·인헌동과 서울대 기숙사, 크게 네 구역에 신문을 배달한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그는 배고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길고양이가 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 사진을 블로그(blog.naver.com/ckfzkrl)에 올려 ‘길고양이가 사람과 늘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알린다. 블로그 필명 ‘찰카기’로 더 유명하다.
깜깜한 새벽, 주홍빛 가로등만으로는 주변을 파악하기에 여전히 어두운데도 김씨는 고양이들을 놓치지 않았다. 신문배달 오토바이가 멈춰서면 그곳엔 항상 고양이가 있었고, 김씨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줬다.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20여 차례 고양이들에게 밥을 줬다. 배달하며 사진 찍는 김하연씨를 취재하기 위해 오토바이 뒷자리를 얻어탄 ‘민폐’ 기자가 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어떻게 고양이들까지 다 보세요? 제 눈에는 안 보이는데요.” 김씨가 답했다. “연애해봤어요? 연애할 때는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눈에 들어오잖아요. 관심이 있으니까, 그 사람만 보이죠. 제가 쟤네랑 연애하나보죠.” 무심하게 말한다.
배달하다 우연히 만나는 아이들도 있지만, 늘 밥을 주며 이름을 지어준 아이도 여럿이다. 김씨와 가장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먼로는 벌써 8살.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아줌마다. “메릴린 먼로처럼 코와 입 사이에 매력적인 점이 있어요. 그래서 ‘먼로’예요.” 김씨가 본 먼로의 새끼만 24마리다.
블로그에 남기는 ‘작별’의 사진먼로에게 밥을 주고 몇 구역을 지났을까. 고양이 한 마리가 신문을 집어넣고 오는 김씨의 다리를 툭 건드리며 얼굴을 비벼댔다. “어, 만피야! 만피야, 왔어!” 만피의 목 주변을 어루만지는 김씨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잔뜩 묻어 있다. 3일 만이다. “아유, 와줘서 고맙다.” 김씨는 “얘들이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서 제 곁으로 밥 먹으러 와주는 게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만피는 ‘만성피로’의 줄임말이다. 볼 때마다 엄청 피곤해 보여서 만피라고 이름 지어줬다.
아기 때 엄마가 떠난 고양이. 이 사진을 찍고 김씨는 “엄마는 뭘 보고 널 떠났을까”라는 글귀를 떠올렸다. 이 고양이는 지금도 김씨가 신문배달을 할 때면 밥 달라고 김씨 주변을 뛰어다닌다. 취재를 간 12월10일 새벽에도 오토바이 주변을 씩씩하게 뛰어다녔다. 김하연 제공
예전에 병 걸린 만피 사진을 찍어 수의사에게 보이고 항생제와 영양제를 처방받아 치료한 적도 있다. 24마리 먼로의 자식 중 한 마리다. 이제는 독립해 먼로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함께 태어난 형제 4마리는 모두 죽었다. 한 마리는 로드킬됐고, 다른 한 마리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
만피를 위해서 건사료와 캔사료를 비빈 뒤 캔 뚜껑으로 사료를 깍둑깍둑 썬다. “만피는 깍둑썰기를 해야 먹어요.” 고양이들도 다 입맛이 다르다. 캔사료만 먹어서 ‘캐니’라 이름 지어준 아이도 있고, 건사료만 먹는 ‘노랑이’도 있고, 캔사료와 건사료를 비벼줘야만 먹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먼로와 그의 아들 만피는 두 개를 비빈 뒤 꼭 깍둑썰기를 해줘야 먹는다. 하루에 보통 1~2분, 길어야 5분, 더 길면 10분씩 만나지만 김씨는 애정으로 고양이들을 관찰해 취향을 파악한다.
길고양이 사진은 왜 찍게 된 걸까. “원래 직업이 기자였잖아요. 그런데 글보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하늘, 꽃, 골목 등 모든 피사체 중 하나로 고양이를 찍었어요. 그러다 고양이만 찍게 됐어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있더라고요.” 김씨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 고양이가 사람과 늘 함께 살고 있음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조금만 그들을 배려하길 바란다. 봉천동의 한 칼국숫집처럼 겨울에 추우니까 들어와 있으라고 저녁에 셔터문을 30cm가량만 열어두는 배려면 충분하다.
김씨가 찍는 고양이는 현실 위에 서 있다. 김씨는 망원렌즈를 쓰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찍으면 주변 배경은 날아가고 고양이의 표정에 집중하면서 고양이들이 예쁘게 찍히는 효과가 있어요. 전 고양이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며 살고 있는지 그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김씨의 고양이 사진 옆에는 헌옷 수거함이 있고, 쓰레기봉투가 있고, 버려지고 때 묻은 이불 더미가 있다. 그 비루한 현실에서 먹이와 온기를 찾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있다.
로드킬 등 안타까운 이유로 세상과 작별한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도 김씨는 찍는다. “1년에 30~40구 정도 죽은 고양이를 발견해 수습해 묻어줍니다. 그중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죽음은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이 사진들은 블로그의 ‘작별’이라는 카테고리에 올라가 있다. 12월9일 새벽에는 서너 달 만에 ‘작별’을 목격했다. 턱은 돌아가고 눈알이 튀어나오기 직전의 상태였다. “크기로 보건대, 겨울 두 번은 족히 넘겼을 만한 성묘였어요. 그 아이 입장에선 산전수전 다 겪은 거죠. 사는 곳 물정도 다 알고요. 그런데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이 좁은 골목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면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렸다는 얘기예요. 너무 추워서 운전자도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 거다라고 추측하지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합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작별도 기록했다.
김씨가 2006년부터 찍어온 길고양이 사진과 글을 담아 펴낸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에는 길고양이들의 길 위의 삶이 담겨 있다. 눈 한쪽이 아픈 고양이, 털이 빠지는 병에 걸려 오들오들 떠는 고양이, 엄마를 잃어버려 슬픈 아기 고양이. 죽은 고양이…. 고양이의 시선으로 고양이를 담기 위해 김씨는 사진 찍을 때면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옷을 갈아입으면 고양이들이 냄새를 낯설어해 배달할 땐 옷도 잘 못 갈아입는 김씨는 천생 ‘캣맘’이다. 배달이 모두 끝난 아침 7시. 김씨는 돌아가는 길에 고양이에게 밥 줬던 곳을 다시 쭉 훑었다. 밥그릇은 수거하고 사료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살펴서 다음번 사료량을 조절한다. 밥그릇을 둘 수 있는 곳에는 사료를 더 부어줬다. 그중 한 곳에는 어미 고양이 1마리와 새끼 4마리가 산다. 새끼들이 있는 곳에는 특별히 물도 준다. “겨울에는 물이 다 얼어버려 고양이들이 물을 구하기 힘들어요.” 물이 천천히 얼도록 설탕을 탔다.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잠이 온다”마지막 코스는 먼로의 영역. 먼로의 밥그릇에 사료를 더 부어두고 김씨는 주변을 살폈다. 주택 골목과 아파트 담벼락 사이 틈 낙엽 위에서 먼로가 새끼와 똬리를 틀고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먼로가 새끼와 자는 모습을 여러 장 찍었다. “아유~ 배부르게 잘 먹었나봐요, 카메라 소리에 미동도 않는 걸 보면. 저러면 이제 오후까지 푹 잘 거예요.” 제 새끼 배불리 먹이고 포근히 잠재운 어미의 말투였다.
김씨의 하루 중 1막이 저물어간다. 이제 김씨는 진짜 부모 역할을 하러 집으로 발길을 서두른다. 여섯 살배기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줄 차례다. 그 뒤에야 길고 긴 새벽 노동으로 지친 몸에 잠을 선물한다. 김씨에게도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잠이 온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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