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제도가 생겨나고 학생들의 지성을 측정하기 시작하면서 과학자들은 10년마다 사람들의 지능지수(IQ)가 꾸준히 상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플린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교육률이나 매체의 발전, 아니면 다른 사회 환경적 요소 덕분에 인류의 지성은 해가 다르게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근거처럼 인용돼왔는데 책은 이런 믿음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지난 1천 년 동안 인간 개개인의 지적 능력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고 단지 지식이 널리 보급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등생? 처참한 낙오자!
(율리시즈 펴냄)은 지능지수는 물론 순위 매기기를 근거로 한 교육 시스템, 문자 형태로 축적된 모든 지식이 과연 진정한 앎인지에까지 의문을 제기한다. 책엔 에른스트 푀펠이 지도했던 한 한국인 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등생 김군은 한국 대학에서 신경학 분야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고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이미 두뇌 기능과 신경 작동 방식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푀펠이 보기엔 그는 “복제 가능한 지식을 방대하게 쌓아두었을 뿐 상상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같은 독창적인 지성 면에서는 처참한 낙오자”라는 것이다. 지성이나 지능을 단일한 틀로 이야기하는 것은 생전에 어떤 IQ 검사도 받은 적이 없고 기존 교육의 틀로 측정되기 어려웠던 창의적·비판적 지성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인슈타인을 두고 죽은 뒤에야 IQ 160이었다는 추측을 하는 것처럼 과학적 프레임의 견강부회에 가까운 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은이인 독일의 뇌과학자 에른스트 푀펠과 상담치료 전문가인 베아트리체 바그너가 보기엔 모든 것이 과잉이다. 독서, 속도, 심지어 인간관계나 자기 성찰까지도. 스마트폰이 딩동 하고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는 것을 알리면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온라인 소통도 소통이라며, 공동체의 일원 되기를 잘해낸 것처럼 일시적으로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우정과 자기 확신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지식 또한 그렇다. “인간은 어리석다. 인간으로서의 타고난 능력을 무시하고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전제로 출발한 두 사람은 “너무 많은 지식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고 결론짓는다.
‘노력 중독’이라는 제목 때문에 노력에 빠진 우리를 구출하려 한다거나 게으를 권리를 지지하는 책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다. 독일에서 출판됐을 때 이 책의 제목은 (Dummheit)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판 책의 제목은 너무 앞서나갔다. 받아먹기 좋게 요약된 언론의 ‘사실 요약’을 의심하고 정보의 산사태에서 도망쳐야 하며, 소셜네트워크 속 가상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라는 실용적인 충고가 책 곳곳에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아직 알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실패가 예정된 생물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눈뜨는 산책로의 의미이 불가지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신경과학의 수다한 질문과 철학적 답변을 저울에 달아본 끝에 책은 활자나 매체에 의존하기를 그만두고 직접적인 경험으로 세상을 만나기를 권한다. 문자가 보편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기억력, 일상의 복잡한 절차를 줄인 사람들이 새롭게 눈뜨는 산책로의 의미, 자기 성찰을 그만둔 사람들이 발견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 등을 이야기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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