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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알려주는, 살아가야 하는 이유

참사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재일학자 강상중의 소설 <마음>
등록 2014-08-30 15:15 수정 2020-05-03 04:27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 책은 이렇게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하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대학생 니시야마 나오히로, 아들을 잃고 상실감에 젖은 강상중 교수, 그들이 사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사회를 보여주면서.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삶의 경구를 들려주는 이 책, 재일동포 학자 강상중 교수의 소설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이다.

아들의 죽음, 3·11 동일본 대지진…

지난 8월19일 소설 〈마음〉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방한한 강상중 교수는 “이 소설이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그 비극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계절 제공

지난 8월19일 소설 〈마음〉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방한한 강상중 교수는 “이 소설이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그 비극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계절 제공

이 소설은 작중 화자인 강상중 교수가 니시야마 나오히로라는 대학생과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니시야마는 석 달 동안 지진 피해 지역에서 주검 인양 자원봉사를 한다. 참사의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성장한다. 강상중이라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소설 속 ‘나’의 이야기는 아들의 죽음과 동일본 대지진 등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에 나오는 청년은 실제 인물이고, 나오히로는 강 교수의 아들 이름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소설은 30만 부 이상 팔렸다.

지난 8월19일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방한한 강 교수는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참사를 예견한 듯해 놀라고 두렵기까지 했다”며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숱한 죽음을 보고 깨달은 건 국가나 공적인 영역은 완전히 붕괴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인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인문 에세이 등에서 삶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온 강 교수는 이번에는 소설 형식을 빌려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성찰한다. 청년 니시야마와 강 교수는 “대참사를 겪은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나선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년은 “세계의 파멸” 같은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삶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시신을 한 구 한 구 인양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과 마주하는 동안, 어쨌든 ‘나는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야 해.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의미 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공명하는 순간에

근대화 시대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소설은 교수와 대학생 간의 진솔한 감정의 공유 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마음과 마음이 공명하는 순간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는다.

더불어 소설은 사람들이 죽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죽은 이들로부터 무엇을 상속받고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강 교수는 “한국 사회는 원전 사고를 잊고 도쿄올림픽을 향해 달려가는 일본 사회처럼 되면 안 됩니다. 앞으로 전진만 하는 게 아니라 멈춰서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무엇을 남겼는지 ‘마음’으로 전해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달할지 생각하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입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이야기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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