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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대중과 공명하는 ‘성난 인문학’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록 2014-08-17 14:43 수정 2020-05-03 04:27

전남 장성 노인요양병원 화재, 광주 도심 소방헬기 추락, 22사단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 윤 일병 사망사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비극적인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호에 탄 사람들의 절망감과 무기력증은 깊어가고 사회구조에 대해 불안은 커지고 안전망 미비에 대한 분노는 쌓여간다.

이런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강신주, 강준만, 고미숙, 노명우, 문태준, 이현우, 정여울 등 인문학자 8명은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강의를 엮은 (메디치미디어 펴냄)를 내놨다.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그들은 등 고전을 꺼내 인간의 욕망과 절망을 규명하고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찰한다.

저자들은 우리 내면의 솔직한 욕망과 상처를 직시하고 세상의 부조리와 진실을 깨달으라고 촉구한다. 그럼으로써 절망하고, 절망을 넘어 분노할 수 있고, 그 분노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종착점은 될 수 없지만 시작점은 될 수 있다고. 강신주씨도 “진실을 직시하는 가장 위대한 시간은 절망과 위기의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고 쓴 전후문학의 깊이와 가치를 되짚으며 슬픔과 비탄의 바닥을 쳤을 때 희망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정여울씨는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당신을 위한 노래’ 편에서 “악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악을 품지는 말되 분노할 줄 알라”고 말한다. “저항하고 절규하고 분노할 권리. 이것이야말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힘이다. 단순한 격분의 표출이 아닌 이성과 비판과 용기의 합체로서 ‘공적인 분노’가 시민의 성숙한 인식 속에서 조직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할 것이다.” 노명우씨는 한국 사회의 가치체계가 사라져버린 싱크홀 시대에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힘,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스스로 믿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무기력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시대를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그는 인간성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으며 “인간으로 살아남는 길은 비인간되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차단하라”고 충고한다.

이렇듯, 책에는 1950년대 부조리와 부패에 맞선 영국의 ‘성난 젊은이’와 닮은 ‘성난 인문학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책의 서문에서 강준만씨는 “이 책은 고전 탐구나 정신 수양의 인문학이 아니다. ‘성난 대중’과 공명하는 ‘성난 인문학’이다. 철저하게 절망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것. 이것이 성난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한다. “사회가 절망을 권하거든,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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