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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후덥지근한 여름밤, 어김없이 ‘그 남자’를 찾았다. 당시 내 ‘재미’의 총집합체는 ‘그 남자’였다. 그의 손놀림에 심장은 100배 요동쳤다. 춤추듯 휘젓는 그의 손짓은 내 영혼을 나른한 천국행 버스에 태웠다. 몸도 반응했다. 가장 먼저 혀에서 신호가 왔다. 흥건한 침이 고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영국의 스타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 를 진행하는 그 남자는 멋있었다.
여름밤 친구들을 초대한 그. 커다란 수박을 주방 식탁에 턱 올렸다. 수박화채라도 만드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보드카 한 병을 수박에 꾹 박는다. 졸졸 러시아의 웅장함이 흘러 들어갔다. 여름밤 파티 디저트였다. ‘오호, 세상에 저렇게 간단한 요리가 있다니!’ 귀차니스트를 위한 최고의 간편식이다. 언젠가 꼭 해보리라 결심했다.
기회가 왔다. 도전에 나섰다. 5~6kg의 수박을 샀다. 보드카는 스톨리치나야를 골라 팍 꽂았다. 예술 감각이 돋보이는 앱솔루트 보드카가 아무리 대세라지만 보드카 하면 역시 스톨리치나야다. 스톨리치나야는 러시아의 전통 보드카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이 흐른다. 어째 좀 이상하다. 보드카가 줄지 않는다. 뽑았다. 복병을 만났다. 빨간 수박 조각이 병 주둥이를 막고 있었다. 조각을 빼고 더 깊이 힘을 줘서 쑤셔넣었다. 우지직! 휘청! 술 취한 수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무거운 보드카 앞에서 수박은 무너졌다.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이의 재주에 따라 맛이 다르다. 내가 제이미가 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보드카 특유의 향이 밴 수박 맛은 특이하다.
사실 여름날, 늘 그리운 시원한 마실거리는 리슬링 화이트와인이다. 한때 와인에 미친 듯이 돌진해 ‘마시기’와 ‘열공’을 한 적 있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와인은 이미 폭탄주에 길든 내 몸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독일 모젤강과 라인가우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품종 리슬링으로 만든 화이트와인만은 예외였다. 적당히 ‘칠링’해서 더운 바람 부는 노천카페 발코니에서 한잔 마시면 나른한 천국이 눈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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