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새벽 6시에 잠들어서 낮 12시가 조금 지나 일어나는 올빼미족이다. 요즘은 새벽 4시에 잠들어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는데, 1980년대 초부터 지금껏 밤낮이 바뀐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그분이 낸 책의 제목도 였다. 그분은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올해 일흔인 이 올곧은 올빼미 학자의 책은 현명하고 아름다운 밤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나는 서울 북촌 한옥 골목에 산다. 대단한 관광지다. 낮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수많은 관광객이 다국적 언어로 떠드는 게 들린다. 나는 낮에는 번잡한 이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집 안에만 있거나 다른 동네로 나선다. 하지만 저녁 6시에 해가 기울면 이곳은 완전히 탈바꿈한다(사진). 관광객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골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며 야트막한 한옥 지붕 사이로 수줍은 아름다움만이 내려앉는다. 그러면 나는 천천히 동네를 걷는다. 그렇게 시간대를 신중하게 이용하기 때문에 나에겐 북촌이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남아 있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성수기엔 여행을 가지 않는다.
배구에는 시간차 공격이 있다. 수비수들이 예상한 시간보다 빨리 또는 늦게 하는 공격 방법이다. 블로킹할 새도 없이 내리꽂아버리거나, 블로킹하려고 선수들이 뛰어올랐다 내려가고 나서 네트가 한산할 때 쳐넣는 것이다. 예상 가능한 시간대를 비껴서 이용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예전에 경복궁역 근처 해장국집은 항상 문이 닫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은 새벽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만 여는 집이었다. 새벽에 등산 다녀오는 청와대 관련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애용하던 집이어서 그 시간엔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돈도 잘 번다는 거다. 늦잠형 인간인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대를 이용하는 가게였다.
요즘 홍익대 앞에는 트럭 팟타이 집이 있다. 밤 10시30분부터 새벽 5시까지 연다. 문 닫은 옷가게 앞 공간에 트럭과 접이식 테이블, 의자가 놓인다. 가격도 싸고 맛있어서 출출한 밤 나와 친구들에게 등대가 돼준다. 부암동엔 낮에는 플로리스트의 꽃집, 한밤부터 새벽까지는 술집으로 변하는 ‘심야오뎅’이 등대로 서 있다. 아베 야로의 만화 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 여는 도심 한구석의 작은 밥집을 배경으로 한다.
평일엔 열고 주말엔 닫는다는 상식을 비집고 들어가보면 어떤가? 홍대 앞 문구가게 ‘오발’(Oval)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다. 제주 비자림 근처 식육식당은 금·토·일 딱 3일만 연다. 상식이 꼭 나에게도 상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술을 밤에만 마시고 잠을 밤에만 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낮술과 낮잠은 얼마나 달콤한가. 이란 소설책도 나와 있더라.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4시. 관광객이 없으니 참으로 조용하고 좋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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