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정의된 성’을 뜻하는 젠더(Gender).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범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도 작동한다.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은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바로 이 젠더의 차이에서 나온다. 가령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과 자동차 장난감을 선물하고, 여자아이에게는 분홍 옷과 인형 장난감을 준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남성상과 여성상을 주입시킨다. 더불어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남·여,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매 순간 우리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렇게 젠더 이분법으로 나뉜 것이 성별화된 사회(Gendered Society)다.
(동녘 펴냄)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이분법에 의문을 던진다. ‘15개 시선으로 읽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부제 속에서 역사, 사회학, 인류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과 학문에서 젠더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한다. 먼저 ‘인류학으로 젠더 읽기’편에서는 현대사회의 젠더 이분법이 당연한 것이 아닌 문화와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파푸아뉴기니의 후아 사회는 성 정체성이 일생 동안 서너 차례 바뀐다. 후아 사람들은 ‘누’(nu)라고 부르는 생명력이 많을수록 여성적이 되고, 이것이 결핍될수록 남성적이 된다고 믿는다. 남자가 여자와 성행위를 많이 하면 ‘누’가 많이 생겨서 남성의 힘과 생기를 잃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믿으며, 남성은 여성의 성기나 월경을 상징하는 음식을 먹는 것도 피한다. 인도네시아의 부기스 사회에서는 남성/여성의 이분법이 아닌 남성적인 남자, 여성적인 남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성 범주를 나눈다.
책은 자연과학의 성차 연구들을 소개하면서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남녀 이분법을 비판한다. 뇌의 크기로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려 했던 시도, 남성호르몬/여성호르몬이라는 이름짓기로 이분법을 만드는 성호르몬 연구 등 객관성과 가치중립성만으로 성의 차이를 증명하려 했던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 일상을 젠더 관점에서 구석구석 살펴보기도 한다. 가령 “네 생일엔 명품백, 내 생일엔 십자수”라는 말은 연애할 때 경제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남자들의 불만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명품백을 선물할 때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여성의 ‘몸’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남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 나오는 불만이 이 말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는 성평등운동이 가능할까. 책 끝장에서는 ‘연대 정치’에서 그 길을 찾는다. “민주주의, 복지, 평화, 생태주의가 실현되는 공동체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 성평등운동은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뿐 아니라 국제연대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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