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빛나 제공
지난해 12월21일, 은퇴한 장미란의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르내렸다.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 ‘사모님’의 남편이자, 수감 중인 ‘사모님’의 형집행정지를 위해 회사 공금을 빼돌려 입원비에 사용해 재판을 받고 있던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장미란이 서명한 것이다.
장미란은 이 사건으로 흠잡을 데 없는 선수 생활과 훌륭한 성품으로 그간 쌓아올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나는 장미란이 이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탄원의 의지가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장미란은 ‘사모님 사건’에 대해 잘 몰랐고, ‘장미란’이라는 상징이 필요했던 역도인들의 요청에 순진하게 이름을 빌려줬을 뿐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부터 먼저 든다.
지난해 프로야구 선수 김태균은 인터넷 방송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흑인 선수에 대한 조롱 섞인 농담을 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프로축구 선수 노병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국팀의 흑인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나는 이 선수들도 특별한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대단히 순진한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세계가 너무 좁았음에도 이 거대한 세계와 소통하려다가 발생한 해프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몰랐다’거나 ‘순진했다’는 해명이 언제까지나 그들을 지켜주진 않는다. 이제는 그들도 야구장과 축구장 밖으로, 역도 경기장 밖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확대해야 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첫 출전한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는 남부의 정부군과 북부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국토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이에 코트디부아르의 한 공격수는 월드컵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나의 조국이여,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 그의 호소에 거짓말처럼 정부군과 반군은 전쟁을 멈추었고, 이듬해 5년간의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축구로 조국의 전쟁을 중단시킨 사나이, ‘검은 예수’ 디디에 드로그바의 이야기다.
그는 사재를 들여 조국에 병원을 짓고 아프리카의 전염병 퇴치와 의료서비스 발전, 어린이들의 예방접종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드로그바가 대통령 선거에 나갈 경우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 시민이 대답한다. “선거비용이 아깝습니다. 그가 출마한다면 선거할 필요도 없죠.” 지금 드로그바는 유엔의 지원을 받는 코트디부아르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든 운동선수가 드로그바가 될 수는 없고, 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이 그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건강한 상식으로부터 분리돼서는 안 된다. 은퇴 뒤 정치인 홍보를 위해 동원되는 인력이 되거나, 그의 이름이 필요한 집단에 수많은 피와 땀이 묻어 있는 그 이름을 쉽사리 빌려줘서도 안 된다. 세상엔 그의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체육인은 사회인의 반대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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