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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노동이 약하고 국가가 강했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 민족국가 건설의 전략과 목표, 그리고 노동 정치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노동자는 체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모습에 머물렀다고 이해하는 것”이 국가와 노동의 관계를 바라본 기존 관점이었던 탓에 60년대는 그저 ‘약한 노동’과 ‘강한 국가’의 시기로만 기억돼왔다. 남화숙 미국 워싱턴대 부교수는 이런 기존의 시각에 반기를 든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키운 (남관숙·남화숙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에서 노동운동이 어떤 몫을 차지해왔는가를 심도 있게 파고들어간 책이다. 특히 ‘약한 노동’의 시기인 줄만 알았던 60년대에 조선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던 역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조선중공업은 해방 뒤 국책회사인 대한조선공사(조공)로 거듭났고, 산업화 과정에서 큰 구실을 했다. 전쟁을 겪으며 말살당하다시피 줄어들었던 조직노동운동은 50년대 후반 들어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조공 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50~60년대 조공 노조는 사 쪽의 대량 해고, 임금 체불에 맞서 잘 조직된 파업을 벌이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단체협약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이런 흐름은 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이 대대적이고 폭압적인 노동 통제 정책을 펴기 전까지 계속됐다. 침묵의 70년대를 지나 80년대 노동자대투쟁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끊겼던 흐름이 되살아난 것이다.
지은이는 특히 당시 조공 노동자들이 드러냈던 의식과 담론에 주목했다. 60년 쟁의를 통해 임금 인상을 이끌어낸 조공 노조는 사 쪽에 추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합의된 인상분 총액이 임금이 낮은 노동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야 한다는 ‘하후상박’의 원칙이었다. 조공 노조는 임시공·견습공·파견공·하청공 등 비정규직 노동자과 연대한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는데, 임시공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이고 계약직 고용 중지를 요구해 관철하는 등 이를 실천했다. 또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가장 우선시하며 조합 내부의 민주주의 구현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갈수록 조직노동운동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지금, 60년대 조공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것은 단지 잊혀진 역사의 재발견이 아니다. ‘약한 노동, 강한 국가’라는 주술에 밀려 희미해진 노동자의 주체성과 역량을 되찾는 작업이다. 특히 임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로 민주적인 조직을 구축했던 60년대 조공 노조의 역사는 끝없는 노동계급의 내부 분화에 직면한 지금의 조직노동운동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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