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무키무키만만수는 희한한 악기를 사용한다. 이 악기는 장구와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 그러나 장구처럼 가로로 메는 게 아니라 세로로 바닥에 세워놓는다. 드럼 치듯 위에서 아래로 치면 뚜당뚜당 장구 소리가 나면서 친숙하고도 기묘한 인상을 준다. 페달과 심벌까지 갖춘, 장구이면서도 장구가 아닌 이 악기의 이름은 ‘구장구장’(그림)이다.
신문은 오랫동안 세로쓰기를 고수했다. 모든 책이 가로쓰기로 바뀐 지 오래일 때도 신문만은 세로쓰기였다. 왜 그랬을까? 꼭 그랬어야만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었다. 중앙일간지에 가로쓰기가 등장한 건 1980년대에 와서의 일이다. 2013년 현재 세로쓰기로 된 신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가로로 누운 것을 세로로 세워보거나 세로로 서 있는 것을 가로로 눕혀보는 단순한 시도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다. 1940년대 잭슨 폴록은 세워져 있던 캔버스를 바닥에 눕혔다. 그는 이제 캔버스 위를 폴록폴록 뛰어다니며 물감을 흩뿌릴 수 있게 되었다. 액션페인팅이 시작됐고, 추상표현주의는 새로운 엔진을 달았다.
내가 전통 한옥에서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은 가로로 열리던 문짝을 세로로도 들어서 매달아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벽이던 것이 어느 순간 뻥 뚫리고 안방·대청·건넌방이 하나로 통합되며 널찍한 공간이 생겨난다. 벽이었던 것을 접어서 없앨 수 있다는 감각은, 집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가변적으로 만드는가.
배명훈의 멋진 SF 소설 에는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라는 개념이 나온다. 높이가 674층에 이르고 인구 50만 명이 사는 건물이자 하나의 국가인 빈스토크 안에서, 기간시설인 엘리베이터를 장악하고 수직적 위계를 중요시하는 수직주의자들과, 한 층 안에서 걸어서 이동하며 짐을 나르고 수평적 권리를 중요시하는 수평주의자들은 대립한다. 이에 빗대어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1789년 프랑스대혁명도 왕정이라는 수직적 위계를 밀어서 수평적으로 넘어뜨린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모든 것을 세워서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그 편이 공간 효율이 훨씬 낫고 쓰기에도 편리하다는 거다. 티셔츠 하나를 개어서 바닥에 놓아보면 그것은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 순리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여러 장을 잇대어 착착 세워서 정리해보시라.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티셔츠는 꼭 누워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은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누운 걸 세워보고, 서 있는 걸 눕혀보자. 1960년대에 흑인이자 여성이자 성소수자로, 자신을 억압하는 겹겹의 벽과 몸을 부딪쳐 싸웠던 앤절라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던가.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고.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아이디어 사칙연산’은 새로운 발상법을 독자와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더하거나 빼는 것만으로 바뀌는 세상을 그릴 예정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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