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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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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예술가들의 ‘자격’

시나리오작가 고 최고은 사건에 공감한 예술가 모임 ‘네시이십분’
좀처럼 ‘자격’ 얻기 어려운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고 돕는 예술가들
등록 2013-11-23 15:1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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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기대는 자, 기대하는 자, 기다려주는 자.

‘네시이십분’은 그런 모임이다. 예술하는 젊은 친구들이 모였다. 예술하는, 어감이 묘하다. 문화작업자가 낫겠다. ‘기억발전소’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숨결, ‘네시이십분’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준과 은(준은 노래와 시를 만들고 은은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한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지만 스스로를 ‘생활예술인’으로 명명한 고운,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의 대표이자 음악을 만드는 아키, 서울 성북동에서 ‘초록옥상’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커뮤니티를 꿈꾸는 선문, 직장을 잠시 쉬고 홀연히 아일랜드로 긴 여행을 떠난 호진, 그리고 그들에 대해 기록하고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성덕. 이렇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이들의 이름은 왜 ‘네시이십분’일까.

<font size="4"><font color="#C21A8D">가장 많은 이들 자살한다는 생각</font></font>

2010년 11월 어느 날, 서울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에서 준(장혜령)은 3명의 친구를 만났다. 만난 시간이 오후 4시20분, 알고 보니 심상치 않은 시간이었다. 네시이십분에 대한 다큐멘터리 (가제)을 찍는 성덕(차성덕)의 다큐 기획안은 전한다. “새벽 네시이십분은 가장 많은 이들이 자살한다는 시각이었다. 그리고 오후 네시이십분은 방과 후 갈 데 없는 애들이 모여 마리화나를 나눠 피우고 노는 그런 시간을 의미하는 영미권의 은어이기도 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냥 어감이 좋거나 시침과 분침이 만나는 각도가 좋아서, 그렇게 정했다. 왠지 쓰고 보니 어감이 무섭다. 안심하시라. 자살이 아니라 자립, 마리화나 대신에 고무와 찬양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다.

원래는 은(정은)의 글을 책으로 만들려 했다. ‘집념 어린 사람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헐겁고 느슨하지만 질긴’ 모임의 끝이 아닌 시작. 다들 한번 놀러와, 해서 갔다. 오지 않아도, 왜 안 오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슨함은 모임을 이끌었다. 지금도 그냥 허브가 있는 정도. 준이 무언가 들어오면 적절히 연결하는 허브 구실을 한다. 그저 누군가 뭘 하려고 하면, 그래 해봐, 한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 써내기를, 만들기를 적당히 독려한다. 모두가 찬성하지 않아도 좋고, 목숨 걸고 반대할 일도 없다. 아키(이충한)는 “우리가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압감, 소속감, 부담감이 없는 대신 중력이 있다. “서로를 끌지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중력”이라고 아키는 설명했다.

2011년 4월23일, ‘존재하지 않는 책에 관한 낭송회’가 열렸다. 어느 날, 블로그에 소설과 사진을 올리던 E가 사라졌다. 블로그는 폐쇄되고, 글들은 증발했다. 20여 명의 블로그 이웃들은 비록 등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글을 독자로서 사랑했다. 다행히 누군가 혹시나 해서 스크랩한 E의 마지막 글이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이웃들은 각자가 스크랩·저장해두었던 E의 글과 사진을 모아 낭독회를 열었다. 낭독회는 실제로 열렸다. 성덕의 글은 전한다. “기성 사회로부터 작가의 자격을 받지 못했던 E는, 사라진 뒤에 독자들에 의해서 세상 속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다.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다. 사라진 E는 없었다. 애초부터 E는 실재하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자격 안 주면서 힐난하는 세상</font></font>

준이 제안한 낭독회, ‘가상의 E’는 누구였을까. 성덕은 “즉각적으로 시나리오작가 고 최고은을 떠올렸다”고 한다. 낭독회가 열리기 석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이다. 성덕과 준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준은 원래 낭독회가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공감대는 있었다. 네시이십분 모두에게 E가 타자화되지 않는 것. E는 고은의 이니셜 E이기도 하고, 어쩌면 정은의 이니셜 E일지도 모른다. 아니, 네시이십분 모두의 이니셜일지도. 아키는 E가 구성원 각자의 화살표가 향하는 원의 중심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각자의 화살표가 한곳을 향하면 원이 그려지고 텅 빈 중심이 생긴다.” 저마다 다르면서 같았던 낭독회의 의미는 네시이십분의 정체성 같다.

‘네시이십분’은 다양한 분야의 문화 작업자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팟캐스트 라디오 공개방송을 하는 준과 조해진 작가, ‘이 시대의 예술가란 무엇일까’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 워크숍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모습(위부터).네시이십분 차성덕 제공

‘네시이십분’은 다양한 분야의 문화 작업자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팟캐스트 라디오 공개방송을 하는 준과 조해진 작가, ‘이 시대의 예술가란 무엇일까’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 워크숍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모습(위부터).네시이십분 차성덕 제공

, 성덕이 네시이십분을 찍는 다큐멘터리에 붙인 가제다. 정식으로 등단하지 못했거나 정식 데뷔를 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네시이십분 사람들. 예술대학은 양산되고, 작업자는 늘었는데, 인정의 방식은 그대로인 문제가 이들 앞에 있다. 제도는 뚫기 어렵고, 스승은 소통이 어렵고, 세상은 묻는다. “너, 뭐하니?”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작업을 하느라 힘들지만, 기성세대는 그저 골방에서 혼자 정진해서 정해진 방식대로 성공하라 다그친다. 예술학교는 협업보다 경쟁을, 예술적 성취보다 상업적 성공을 가르친다. 늘 마이너한 것에 눈길이 가는 준은 “비주류적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구축하라고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는 다그친다. “노력은 하지 않고.” 이러니 답하지 못한다. “작품이 좋으면 되지.” 돌아올 말이 떠올라 침묵할 뿐이다. 자격은 주지 않으면서, 왜 자격을 갖추지 않느냐고 세상은 힐난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입소문 탄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font></font>

‘사소한 의욕도 자격이 될까요?’ 2012년 3월, 네시이십분의 구성원 1명이 블로그를 통해 도움을 청했다.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이미 등단한 이였다. 당선이 돼도 대학을 중퇴하고 홀로 작업해온 그에게는 청탁이 드물었다. 생계를 위해 일용직·시급제를 전전하며 의욕을 소진해온 그가 처음처럼 의욕을 보였다. 성덕은 “모르는 이에게 돈을 빌리고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작품이나 강연 형태로 상환하겠다는 그의 계획을 보고 우리는 즉각적으로 E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그에게 모은 돈이 굴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아키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준이 그를 만나 뜻을 전했다. “씨앗자금을 우리가 모으고, 1년간 한 사람을 후원하고 후원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수혜자를 위해서 그 돈을 내놓는 형태를 상상해본 거였죠.” 당시 준이 다른 구성원에게 보낸 전자우편의 이런 내용은 현실이 되었다. 의욕에 대한 지원, 200여만원이 모였다. 다른 구성원들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우리의 기대를 의식하기를’ 바랐다. 그는 오랜 공력이 깃든 강의와 콘텐츠를 바탕으로 자기 생산성을 키웠다. 기대하고 지켜보는 일은 이렇게 변화를 가져왔다. 준은 “개인으로 있었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작업을 알아보고 부추긴다, 네시이십분 팟캐스트 라디오가 꼭 그랬다. 은이 준을 부추겼다. “우리가 희귀한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주변에서 희한하게 생각한다. 이걸 라디오로 하면 어때.” 그렇게 권했다고 한다. 2012년 1월 시작한 라디오는 조용히 입소문을 탔다. 어느새 매번 2천여 회 다운로드, 아이튠즈 예술 분야 팟캐스트 10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성덕은 “소강상태 모임에 라디오가 끈이 되었다”고 말했다. 낭독회와 씨앗자금 사이, 네시이십분 구성원은 라디오를 통해 만났다. 준은 네시이십분 동료들을 게스트로 불렀다. 독특한 취향과 경험을 말하니 청취자는 “그런 사람들 어떻게 만났냐”고 물었다.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책들의 낭독회의 성격은 라디오로 이어졌다. 널리 읽히지 않은 작품을 소개했지만, 그래서 만나는 독자도 있었다. ‘대체 네시이십분이 누구냐?’ 궁금해하는 이들, ‘네시이십분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고 공감하는 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숨어 있던 독자를 연결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소설가 조해진, 시인 서대경 등 동시대 한국문학 신예작가를 소개한 방송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나중에 조해진 작가는 네시이십분 공개방송에 함께했다. 자본 없이 온라인에서 공간을 확보하는 사건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인정받기보다 인정함으로 벽 넘어</font></font>

준은 라디오를 통해서 확인했다. 자신이 독자·관객·청중을 먼저 발견하고 다가가면 그들도 나의 독자·관객·청중이 된다는 것을. 준이 좋아하는 영화감독 미란다 줄라이도 “현대 예술가는 자기 관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베토벤·모차르트의 시대가 아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면 관객이 알아서 찾아오는 때가 아닌 것이다. 아키는 세상이 변했다고 말한다. “10~20년 전에 100명의 영화감독 지망생 중 10명이 데뷔했다면 지금은 100명, 1천 명 중에 1명이 데뷔한다. 그 1명이 아닌 이들이 작업을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커뮤니티 아트’일 것이다. 이미 네시이십분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런 구실을 하고 있다.

2011년 가상의 작가 E가 남긴 글로 진행된 ‘존재하지 않는 책에 관한 낭송회’. 기타를 안고 있는 아키, 낭송을 하는 성덕과 듣고 있는 준(왼쪽부터).네시이십분 차성덕 제공

2011년 가상의 작가 E가 남긴 글로 진행된 ‘존재하지 않는 책에 관한 낭송회’. 기타를 안고 있는 아키, 낭송을 하는 성덕과 듣고 있는 준(왼쪽부터).네시이십분 차성덕 제공

세상은 끈질기게 예술가의 자격을 묻는다. 시를 쓰는 준은 아직 ‘정식 등단’ 전이다. 이런 준이 팟캐스트를 하면, “라디오 진행자냐, 문학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자꾸 따라나온다. 성덕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제영화제에서 단편영화로 수상한 적이 있지만, 을 찍는 그에게 “극영화 하던 사람이 왜 다큐로 넘어온 거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성덕은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넘고 말고 할 문과 벽이 없는데, 그들한테는 있는 거고, 그들의 문을 통해 보니까 나는 거기로 들어와야 하는 사람인 거다.” 애정 어린 목소리로 걱정하는 기성세대도 있다. “야, 재능도 있는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말은 당사자도 혼란에 빠뜨린다. 라디오를 시작한 뒤에도 준은 “혼란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세상의 기준이 정한 해야 할 일과 지금 하고 있는 것의 간극 탓이다. 그의 라디오를 통해 숨겨진 작가들이 알려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의심을 버렸다. 준은 “일찍부터 나는 누군가를 인정해주는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의미를 라디오에 가지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덕도 자신의 답을 찾았다. “바깥의 기성세대가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보고 제자리에 두는 것,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자격이다.” 아키가 둘의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누가 나를 인정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남을 인정해버림으로써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문과 벽을 넘는 거죠.”

<font size="4"><font color="#C21A8D">11월16일-12월4일 위크숍도 열어</font></font>

우리끼리 돕는 것을 넘어 우리와 같은 이들을 돕자. 아니 만나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네시이십분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공모한 ‘수요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미 ‘이 시대 예술가란 무엇일까?’를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여기에 온 이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은은 “대부분 잉여·백수 같은 단어가 나왔다”고 전했다. 3분의 2 이상이 예술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이었지만, 응답은 그랬다. 강좌에 이어 참가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보는 워크숍도 연다. 11월16일~12월4일, 네시이십분 사람들이 참가를 신청한 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이 서울 합정동 벼레별씨에서 진행된다. 네시이십분 구성원은 대부분 30대. 이들을 여전히 다음 세대로 부른다면, 다음 세대가 그다음 세대에게 내미는 손인 셈이다. 아키는 워크숍을 하는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는 일이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작업이 바깥의 우리를 우리 안으로 데려오는 결과가 됐으면 한다.” 이렇게 네시이십분 사람들은 들고 난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예술의 성격과 구조를 바꾸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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