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로는 프로니까요.”
지난 11월4일 서울 홍익대 인근 연남동, ‘꿈꾸는 고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선용씨는 “제가 정말 숙소는 잘 골라요”라며 웃었다. 30개국을 여행하며 익힌 숙소 고르는 노하우를 자신이 만든 게스트하우스에 녹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치밀하게 검색하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공들여 했던 일들. 그도 했고 그곳에 오는 이들도 한다.
홍익대 인근에만 300여 개여행자의 로망, 게스트하우스. 나의 숨결이 들어간 공간에 나와 같은 이들을 ‘모시는’ 일이다. 지금 그는 연남동에 앉아 있지만, 그 일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됐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 빌라프란카를 지나고 있었다. 그가 묵은 순례자 숙소,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부부가 행복해 보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영어강사를 하다가 진로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는 지난 6월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원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했어요.” 그는 그렇게 답했다.
“괜히 만실이면 미안해요.” 주인의 욕심이 가득한 공간은 답답하다. 하나라도 침대를 더 넣으려 애쓰는 게스트하우스, 그것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되도록 공간에 여유를 두었다. 1층은 아침을 먹는 공유 공간, 2~3층은 숙소로 정했다. 이씨는 “게스트하우스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쉬면서 충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끌벅적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는 ‘파티 게스트하우스’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웬만하면 나가서 놀라고 해요”라며 웃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이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즐겁게 느껴야죠”라고 덧붙였다.
‘오지랖 대마왕’ 벤은 12월에 다시 온다. 한국에 커피를 팔러 왔다가 클럽만 다녔던 청년. 같은 방에서 만난 캐나다 비보이 핸슨과 어울려 다녔던 벤이다. 핸슨은 비보이 강국 한국에 춤을 배우러 왔다. 벤은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자기가 가져온 커피를 숙박객한테 타주기도 했다. 이선용씨는 “사업이 되려나 싶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며 웃었다. 놀기만 하던 벤이 떠나기 이틀 전에 클럽에서 만난 사람과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벤은 12월 다시 ‘꿈꾸는 고래’로 온다.
기억에 남는 여행자가 또 누구냐고 물었다. 이씨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줄줄이’ 앞에 세우고 있는 여성들 사진을 벽에서 떼냈다. 브라질 자매들, 가방 1개씩을 가져와 3개씩을 가지고 떠났다. 이씨는 “시간을 아끼려고 끼니마다 돈가스 도시락을 여기서 먹으면서 쇼핑을 다녔다”고 사진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한 살림을 장만해 떠났다. 이씨는 “브라질에 돌아가면 3명이 같은 집에 산다고 했다”며 “그릇, 냄비 등을 사 모으다 나중에는 바비큐 기계를 어디서 사는지도 묻더라”고 전했다. 이렇게 관광도 뒷전이던 이들은 나중에 비행기 탑승객 1인당 수하물 한계 중량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미 홍익대 인근엔 300여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신고하지 않은 업체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왜 홍대를 골랐냐”고 물었다. 그는 “공항철도가 바로 이어지고, 지하철로 관광지에 가기도 좋다”고 답했다. 그가 예전부터 놀던 동네라 자신감이 더했다. 비싼 임대료를 내느니 차라리 은행 이자를 내자고 결심하고 단독주택을 구해 리모델링을 했다. 그렇게 노란색 건물은 동네 어르신들이 약속 장소로 애용하는 연남동 랜드마크가 됐다.
다음날인 11월5일, 이태원 시장의 뒷골목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평일인데도 오후의 골목에 빼곡히 늘어선 옷가게에 제법 손님이 있었다. 가끔 거리에 일본어와 중국어가 섞이기도 했다. 이태원 시장 가운데, 계단을 올라가니 야외 테라스에서 여기현 ‘팝 앳 이태원’(POP @ ITAEWON)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20대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일해온 31살 사업가는 2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그는 “이태원에 10곳이 생기고 두세 곳이 망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명동에서 시작된 게스트하우스는 홍대·이태원·서울역 등지로 영역을 넓혔다.
“수익 다음에 솔(Soul)도 있다”‘팝 앳 이태원’ 건물 벽에는 앤디 워홀의 바나나 그림이 있고, 실내엔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No War’(반전) 사진이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사인 CD도 전시돼 있다. 이렇게 여기는 한류와 팝문화를 테마로 한 곳이다. 여 대표는 “세련된 문화를 저가에 즐기려는 ‘칩 시크’(Cheap Chick) 시장에 주목했다”며 “강력한 저가 숙박업소 브랜드를 만들려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이벤트 사업을 하는 그의 노하우가 공간에 담겼다.
그도 익숙한 곳에서 첫 시도를 했다. 여 대표는 2002년 이태원 살사클럽에서 바텐더를 했고, 2006년 이태원에서 카투사로 복무했다. 지금은 “저기 건너편에 산다”고 말한다. 사실 외국인에게 이태원은 여전히 ‘깊숙한’ 곳이다. 한국에 처음 오는 이들이 머무는 동네는 아니란 것이다. 그는 “한국에 간다고 하면 ‘또 명동 가니?’ 소리를 듣는 이들, 이태원에 사는 외국인들의 친구, 주말에 클럽을 즐기러 오는 지방의 영어강사 같은 한국을 잘 아는 이가 많이 온다”고 전했다.
숙박객 국적은 “복잡 미묘”하다. 어느 나라도 30% 이상을 넘지 않는다. 그는 “은근히 무슬림이 많다”고 전했다. 이슬람식 도축 의식을 거친 할랄 푸드를 파는 식당이 있고, 한국 이슬람 중앙성원도 있는 동네가 이태원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대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이 대표는 테라스 한쪽을 가리키며 “여기에 카펫을 깔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무려 24명의 가족이 함께 온 이들은 방을 통째로 빌리다시피 했다. 여 대표는 “무슬림들은 직접 만나면 매우 부드럽고 정중하다”며 “조식에 이들이 즐기는 난도 넣고, 기도실도 마련해 무슬림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여행자의 ‘아시아적 특성’도 알게 됐다. 전에는 아시아인 여행자들이 “부끄러움을 타서” 다른 여행자와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아시아인 여행자에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목적이 15개라면 그중의 하나 정도”라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를 만들고 같이 놀러 가고 하는 것이 중요한 서양인들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생활이 보장되는 게스트하우스를 게스트들이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원래는 게스트하우스를 수십 개로 늘리려 했다. 1호점을 열면서 50여 개 매뉴얼도 만들었다. 지금은 일단 확장 계획을 보류했다. 저가 숙박사업 특성을 더 파악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1호점을 통해 이태원의 특성도 알게 됐다. 그는 “여행 기간이 짧으면 핵심 구역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며 “아직 이태원은 숙박하기보다 머물렀다 가는 동네”라고 말했다. 여기에 게스트하우스를 생계형 산업으로 묶어두려는 행정적 제약도 발목을 잡았다. 그는 “수익이 게스트하우스의 솔(Soul)을 해쳐선 안 되지만, 수익 다음에 솔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나라에서 오는 한류팬들 북적다음날인 11월6일 연남동 ‘스테이코리아’(Stay Korea) 거실, 벨기에 출신 청년은 한국인 주인을 보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손짓까지 써가며 하루 종일 못했던 하소연을 풀어놓았다. 주인은 능숙한 프랑스어로 청년의 하소연에 맞장구를 쳐줬다. 프랑스에서 15년을 살았던 이선영씨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만난 남편 이호석씨와 “오래 같이 있고 싶어”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벌써 11년 전이다. 부부는 “저희가 첫 번째 홍대 게스트하우스”라고 말했다. 지금은 남편이 ‘스테이코리아’, 아내가 ‘컴코리아’(Come Korea)를 운영한다.
그들에게 게스트하우스는 오랜 로망이 아니었다. 막상 시작하니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 6~7년은 직원도 두지 않았다. 덕분에 사업은 안정을 찾았다. 스테이코리아에 오는 여행자의 70%는 프랑스인이다. 이날도 프랑스 한류팬 32명이 머물고 있었다. 프랑스 한류 잡지를 내는 이들과 이들이 이끄는 단체 관광객이다. 이선영씨는 “아침에 아이돌 가수 이름이 적힌 티셔츠로 거실이 가득 찬다”고 전했다. 프랑스가 아니라도 한류팬들은 여러 나라에서 온다. 그는 “월드투어를 안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슈퍼주니어, 빅뱅 같은 인기 그룹의 콘서트가 있으면 숙박객이 늘기 때문이다. 아이돌 가수 엄마가 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치킨집, 서울 인사동 식당을 찾아다닌 팬들은 늦은 밤에야 숙소에 돌아온다.
여기서 오늘의 문화가 아니라 역사의 상처도 만난다. 이호석씨는 “입양인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 입양인이 와서 머문다. 이씨는 “한국이 후진 나라가 아니라고 알려져서 뿌리에 관심 갖는 이가 늘었다”고 전했다. 선뜻 용기를 내서 엄마를 찾는 사람, 천천히 한국 문화를 익히며 기다리는 친구도 있다. 반면에 아기를 입양하러 온 프랑스인 부부도 있었다. 이렇게 스테이코리아에 머무는 이유는 겹친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 가족처럼 지내는 외국인도 생겼다. 이들은 해마다 한국에 온다. 부부에게 포도주를 선물하고, 동네 김밥집 아저씨와 인사도 나눈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에 끌리는 이들이다. 거리에 대형차가 많고 밤새 노느라 불야성을 이루니 가끔은 “한국인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이 부부도 역시 중국인 하면 쇼핑을 꼽는다. 이선영씨는 “화장품, 과자 등을 잔뜩 사와서 방이 미니슈퍼가 된다”고 전했다. 중국인들이 밤이건 낮이건 서울에 도착하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단다. 명동이다. 환율을 높게 쳐주는 환전소가 있어서다. 다른 아시아 사람들 중에는 말레이시아 출신이 좋다고 말했다. 이호석씨는 “무슬림인 이들은 ‘동쪽이 어디냐’고 묻고 기도 전에 바가지를 달라고 해서 발을 씻기도 한다”며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도 기도를 계속하는 경우만 빼면 참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호텔에서 만들기 힘든 추억이렇게 이들은 오는 여행자들을 환대하며 10년 넘게 지냈다. 경쟁이 점점 심해져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부부를 만나고 나오는 스테이코리아의 거실 벽에는 말끔한 한글로 쓴 엽서가 있었다. “앞으로 여유 있으면 태국에도 언젠가 환영합니다.” 태국인 여행자가 남기고 간 글귀다. 이렇게 게스트하우스에는 호텔에서 만들기 힘든 추억이 있다. ‘추억은 비싸지 않다.’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 벽에 저비용 항공사 광고가 보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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