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됐을 때 읽고 싶지 않았다. 18대 대선 전부터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해온 ‘그들’의 의도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있는 그대로를 옮기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말과 글은 점 하나만 찍어도 의미가 확연하게 달라지지 않는가.
대화록 공개는 ‘범죄’, 그들은 ‘확신범’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불거진 뒤엔 전문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4시간 가까운 노무현-김정일의 대화가 오로지 NLL과 굴욕적인 태도 문제로만 집중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문을 읽은 뒤에는, 남북관계와 북핵·6자회담의 지난한 역사를 개략적으로라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해설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계를 떠나 자유인이 된, 부지런한 저술가 유시민이 그런 작업을 했다. (돌베개 펴냄)이다. 그는 대화록을 제대로 독해하기 위해 “(정상들과의) 정보 격차를 완화하고 메시지의 압축을 해제해서 대화록을 해설”하는 수고를 자처했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면, 모두 8장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쟁점이 됐던(앞으로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악용할)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포기했는가’와 ‘대화록 유출과 범죄의 재구성’이 고갱이다. 대화록 전문을 꼼꼼히 읽어본, 상식 수준의 독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품을 법한 ‘그래서 어느 대목이 NLL을 포기했다는 거야’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있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그들은 북을 미워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한다. 대화록은 그들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남북의 권력자들이 한 회담 기록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북과 노무현에 대해 자신들이 지닌 부정적 감정과 공격적 충동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발언들을 찾아냈다.” 유시민은 대화록을 정치쟁점화하고 공개한 것을 ‘범죄’라 부르고, 주도한 이들을 ‘확신범’이라 표현한다. 감정과 충동에 눈이 멀어 오독하고 곡해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혹자는, ‘그들’이 ‘마사지’된 발췌본 말고 전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을까 의심한다.
다음 장인 ‘친미국가도 자주를 할 수 있는가’ ‘북핵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북의 체제 붕괴는 좋은 일인가’는, 대화록 해설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를 같이 고민해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평온해 보이지만, 우리의 의지와 바람과는 무관하게 한반도에 사는 8천만 명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는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소할지가 담겨 있다. 사실 북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더 잘났다고 소리치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갑작스런 남북관계의 변화가 가져올 재앙에 대비하는 것이, 이 땅에 살고 있고 살아갈 이들을 위해 훨씬 현명하다. 유시민은 ‘그들도 사람이었다’에서 두 정상의 인간적 면모를 엿본 것을 “대화록 공개가 불러들인 ‘좋은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그에 빗대면, 남북관계 및 북핵·6자회담에 대한 내용은 역설적이게도 ‘뼈와 살이 되는 부작용’이라고 부를 만하다.
임기 말 정상회담 추진 설명 없어 아쉬워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남북관계의 변화는 (북의) ‘혁명의 신화’가 깨지고 (남의) ‘난민촌 정서’가 녹아내린 바로 그곳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고 밝힌다. 아쉬운 대목은, 그가 남북관계 전문가가 아님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서를 내놓으면서, 노무현 정부가 왜 집권 초가 아닌 임기 말에야 정상회담을 추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김보협 에디터부문 편집2팀 기자 bhki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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