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 제리(톰 크루즈)는 미국 주류 백인사회의 표본적인 남성상이다. 로스쿨 출신의 성공한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감상에 치우친 제안서를 작성해 배포했다가 회사에서 퇴출당한다. 제안서의 내용은 수익을 줄이고 삶의 본질에 신경 쓰자는 것이다. 제리는 자기 철학대로 운영할 새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를 차리고자 미식축구 선수 로드(쿠바 구딩주니어)와 접촉한다. 그런데 비주류 사회에서 탈출한 출세 흑인을 대변하는 로드에게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그는 힙합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리듬에 맞춰 제리가 자신의 신조를 복창할 것을 요구한다. “쇼 미 더 머니!”
세속성 혹은 속물성의 긍정돈을 적게 벌고 삶에 신경 쓰겠다는 백인과 삶을 위해 돈을 내놓으라는 흑인. 는 미국 사회를 양분하는 두 인종·문화 사이의 충돌과 화해를 구체적인 지점에서 탐색하는 영화다. 흑인인 로드에게 백인인 제리의 고고한 윤리학은 방어적이고 순진하며 위선적인 것으로 비친다. 그렇다고 로드가 마냥 속물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의 신조인 ‘쇼 미 더 머니’는 엄밀하게는 ‘돈을 내놔’보다는 ‘가치를 증명해봐’에 가까운 뜻으로 읽힌다. 평화, 사랑, 존경, 돈을 포함한 삶의 소중한 모든 것을 그는 ‘콴’이라고 부른다. ‘돈’ 없이 ‘콴’을 얻을 수는 없지만 ‘돈’을 가진다고 꼭 ‘콴’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 대목에서 주류인 제리와 비주류인 로드의 세계는 접경한다.
이렇게 세속성 혹은 속물성을 긍정하는 태도는 현대 미국 흑인문화, 그 가운데서도 특히 힙합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이다. 흑인사회의 계급적 실존의식이 뒤틀려 표출된 것이라는 평가가 합당하겠지만 먼저 흑인사회의 계급적 실존양태가 뒤틀려 있다는 걸 감안해야만 한다. 힙합문화는 친자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종종 받는데, 힙합의 발원을 함께 살피면 이는 사실이면서 또한 사실이 아니다. 힙합은 마르크시즘이 세속적이라는 의미에서 세속적이고, 마르크시즘이 유물론적이라는 의미에서 유물론적이고, 마르크시즘이 공상적이라는 의미에서 공상적이며, 마르크시즘이 계급적이라는 의미에서 계급적이다. 하지만 이 문화의 양식이 계급적 뿌리로부터 유리된 채 무늬만 갖춘 포장재로서 한국에 수입되었을 때도 무리 없이 이식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엠넷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는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시즌 1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신화를 쓴 와 의 포맷 위에 랩이라는 텍스처를 입혀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시즌 2에서는 좀더 ‘힙합적인’ 요소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사랑’처럼 낯간지러운 주제를 던져주고 전국노래자랑식 경합을 벌였던 시즌 1과는 달리, 형식적으로는 크루배틀과 일리미네이션 토너먼트를 도입해 대결구도를 강화했고 내용상으로는 가사를 출연자의 자유재량에 맡긴 뒤 편집 과정에서 가위질하는 결단을 내렸다. 출연자에게 제한적인 주제를 던져주고 방송에 적합한 방향을 유도했던 시즌 1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제작진은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을 소개하기보다는 랩게임으로서의 재미를 구현하는 쪽으로 기획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의 수용성을 살피면서 앞으로 실험의 속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팀별 경연을 벌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일대일로 경연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디스게임’으로 진화할 것을 예상해본다. 전형적인 ‘랩배틀’의 형태로. 전략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싸움 구경은 늘 재미있다. 특히 말싸움은 힙합에 문외한인 시청자에게도 문화적으로 익숙하다. 바로 ‘논쟁’의 외관으로.
난 너보다 세다 vs 난 너보다 유명하다사실 대한민국만큼 논쟁적인 대결사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땅의 동서남북 상하좌우에서 온통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동서의 지역대결, 남북의 체제대결, 상하의 계급대결, 좌우의 이념대결. 그러나 개별적인 논쟁은 결국 인간 대 인간의 자의식을 건 승부로 귀착하기 마련이다. 승부의 욕심이 논제의 필요를 앞설 때 논쟁은 외설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논쟁의 외설성은 의제를 확산시키고 논쟁자들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로를 ‘블로거’ ‘듣보잡’이라 부르며 무수한 저격전을 벌였던 진중권과 변희재가 그러한 논쟁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둘 사이에 놓인 전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확산시켰듯이, 래퍼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사이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디스전은 힙합의 역사에 비슷한 공헌을 했다.
갱단이 동원된 총격전으로 당사자들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 이 전쟁의 신화적 외설성은 1990년대 힙합의 중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종교적인 존재로 격상시켰다. 투팍의 유작 (God bless the dead)의 가사처럼 죽은 자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천국이 따로 있다면, 내 생각에 그는 정적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같은 테이블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추억에 젖어 있을 것 같다. ‘랩쟁’과 ‘논쟁’의 차이라면 승부처가 물리적 자본에 놓였느냐, 아니면 상징적 자본에 놓였느냐 정도다. ‘난 너보다 세다’ ‘난 너보다 부유하다’ 같은 자기과시는 디스랩에서 자주 보이는 구절이다. 유치한가? 단어 하나씩만 치환해서 ‘난 너보다 똑똑하다’ ‘난 너보다 유명하다’로 바꾸면 즉시 지식인 사회의 논쟁에 투입할 수 있는 흔한 수사적 무기로 변하는데? 물론 ‘랩쟁’의 규칙은 논쟁의 규칙보다 더 유연하고 사악하다. 반칙의 암시는 물론 실질적인 반칙마저 허용되기 때문이다.
난 정정당당하게 안 싸워, 더러운 놈이라
내가 뉴욕 퀸스의 사우스자메이카 구역 출신이란 거 모르냐
거기선 가로등 불 들어오면 서로 권총을 쏴댄다 감옥에선 시간 때우려 독서를 하고 -(If I can’t), 50센트
“지금 도망가고 있습니다” “도망가긴 미친”가사로써 폭력성을 드러내는 래퍼를 일컫는 ‘허슬러’라는 속어가 있다. 사전적으로는 양아치, 불한당 정도로 번역된다. 원래는 뒷골목에서 마약을 팔거나 사기를 치며 연명하는 깡패를 뜻하는데, 빈민가에서 보낸 어두운 성장기를 훈장처럼 과시하는 가사를 쓰는 래퍼들이 늘어나면서 이 단어는 ‘실력자’에 가까운 긍정적인 의미로 세탁되었다. 한편 무용담을 늘어놓는 허슬에 그치지 않고 뒷골목을 벗어나 쟁취한 부와 명예를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스왜거’라고 한다. 사전적으로는 겉멋, 허세란 뜻이며 유사한 우리 속어로는 ‘된장’ 정도가 있겠다. 목걸이, 금반지, 스포츠카 혹은 리무진,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 삐딱한 자세. 힙합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이 바로 스왜거다. 랩 자체를 하나의 게임으로 본다면 허슬과 스왜거는 포커의 블러프(허풍)처럼 시합과 결부된 외부 규칙으로 작동한다.
좋은 패를 갖고 상대의 수를 읽어도 레이스에서 허풍을 대로 못 치면 포커에서 이길 수 없듯이, 배틀에서 이기려면 랩을 잘해야 하고 상대를 골려야 하며 ‘나 이런 람이야’라는 메시지를 허슬과 스왜거에 담아 위압해 야 한다. 의 출연자인 스윙스는 이런 허 슬과 스왜거에 충실한 태도로 시건방지다는 비난과 힙 합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변론 사이에 놓였는데, 사실 허슬과 스왜거가 딱히 랩게임만의 독특한 규칙이 라고는 볼 수 없다.
진중권과 변희재의 합의로 시작된 이른바 ‘사망유희’ 토론은 콘셉트부터 ‘지는 쪽은 죽는다’였다. 토론자들 이 승부에 목숨을 건 가운데 논제는 아득하게 증발했고 “진중권씨 지금 도망가고 있습니다”와 “도망가긴 미친”의 두 마디 어록만이 남아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정 도면 굉장한 허슬이 아닌가? 트위터에서 낸시랭과 설전 을 벌이던 변희재가 논쟁의 우위를 점하려고 낸시랭의 가정사를 폭로한 사건은 또 어떤가. 영화 에서 에미넘이 랩배틀 상대방인 갱스터 파파독의 가정사를 폭로하며 승리를 쟁취하는 장면을 참고한 게 아닌가 의 심이 들 정도다. 허슬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스왜거 역시 만만치 않다. 변희재가 시작한 무차별적 논문 검증 논란 에 대응해, 진중권은 트위터에 자신의 석사논문을 제대 로 검증하려면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일어·러시아어 정도는 다뤄야 한다고 태연자약하게 큰소리를 쳤다. 래 퍼 50센트가 그의 노래 (In da club)에서 ‘너희가 나처럼 랩 하나로 여자, 집, 차, 수영장, 보석을 살 정도는 되냐’는 가사를 당당히 썼던 것처럼 말이다. 변희 재 역시 둘째가라면 서럽다. 몇 년 전 광우병 논란 당시 그는 소송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거나 일주일에 인문 사회과학 서적 두 권 정도는 읽는 지적 수준이 되는 경 우에만 입을 열라고 엄포를 놓아 연예인들의 소신 발언 을 일거에 잠재웠다. 이쯤 되면 미국 <bet> 방송의 프리 스타일 랩배틀쇼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중국계 미국 인 래퍼 MC 진이 ‘나한테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차이나 타운의 대로에서 목이 매달린 채 발견될 것’(실제로 차이 나타운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이라는 희대의 허풍랩으 로 상대방이 새파랗게 질려 기권하게 만들었던 사건에 비교해도 아무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시선을 트위터에서 잡아채 가길
논쟁의 외설성은 금기처럼 여겨지지만 실상 논쟁의 성 공을 결정짓는 열쇠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적인 논쟁 가들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 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기려면 논리가 필 요하지만 지지 않으려면 반칙을 감수하는 담력이 더 요 긴하다. 이 지점에서 계급의식이 어그러져 표출된 힙합 문화와 이념의 문제가 지식쟁의로 윤색된 한국의 논쟁 문화는 호환된다. 쌍방이 전선과 전장에 실존적으로 귀 속되지 않기에 다툼이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변질되 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는 엠넷 특유의 ‘악마의 편집’과 선정 성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에게 이 프로그램은 충분히 자극적이기는커녕 한창 싱거운 맛이다. 여전히 가장 선정적인 시합은 트위터에 서 벌어지는 중이니까. 소설가 박형서는 소셜네트워크서 비스(SNS)가 보편화되기 오래전에 지식인 논쟁의 본질 적 속살을 드러내는 예언적인 단편소설 ‘논쟁의 기술’을 썼다.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논쟁이란 상대를 설 득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시즌 3의 배틀에서는 적어도 이 정도를 보여주어야 내 시선을 트위터가 아닌 TV채널에 잡아둘 수 있을 것 이다.
손아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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