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민요는 경북 경산 지방 부녀자들에게 구전되는 다. 유교 윤리가 강하게 지배하던 시절 여성들의 시집살이는 고되게 마련이었다. 시집 식구들과의 불화, 생활고, 남편과의 갈등, 친정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 애절한 이야기를 담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시집살이 노래는 작자가 불분명한 채로 각 지방에서 전해왔다. 다른 인생을 살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는 결혼제도의 특성상 언제나 아름다운 화음만 연주될 순 없을 테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구구절절 이어진다.
바람 잘 날 없던 20세기 한반도에서 아내로, 며느리로, 한 인간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엮은 (전 10권)이 최근 출간됐다. 구비문학 연구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109명의 구술자에게 들은 ‘시월드’ 경험담이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시집살이 이야기는 소설 같은 기구한 사연부터 세월이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지금 시중을 떠도는 시집살이담과 똑 닮은 이야기들까지 촘촘하다. 대표 연구자 신동흔 교수(건국대 국어국문학과)의 말처럼 책에 실린 기록은 날것 그대로의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삶의 문학”이다. 한편 요즘 TV에서는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지상파 채널을 넘나들며 시집살이 노래가 넘쳐난다. MBN , 채널A , KBSW 등은 “21세기식으로 푸는 시월드 토크”를 지향하며 출연자들에게 속풀이 공간을 마련했다. KBS 에서는 가족 갈등을 풀어내며 ‘시월드’ 문제도 품는다. 두 세기에 걸친 같고도 다른 시집살이 노래를 들어봤다.
“시집살이, 내 시집살이했는 얘기 할, 다 할라 카면 하룻밤으로도 몬하는디, 우예 다 할라 하노.” 경북 포항에 사는 김남규(84) 할머니는 청자들을 마주하고 앉아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을 테다. 김남규 할머니는 열일곱 되던 해에 깊은 산골의 독가촌으로 시집을 갔는데 형편이 어려워 굶는 날이 더 많았다고 했다. 누에를 치고 삼베며 명주를 짜고 농사일을 하면서 틈이 나면 봇짐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곤궁한 살림에 제대로 먹지도 못해 늘 속이 아팠는데 시시콜콜 꾸지람을 일삼는 유별난 시아버지 때문에 시집살이는 더욱 고단했단다.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고된 삶이었지만 막상 생을 놓자니 “며느리 하나 죽는 거는 논둑 하나 무너진 거밖에 안 된다. 큰 소 한 마리 죽는 거보다 몬하”더란다.
비슷한 시기 경남 하동의 박정애(81) 할머니는 시집의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던 자리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박정애 할머니는 9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머니는 박정애 할머니가 짧은 명을 타고났다며 재취 자리에 혼처를 구했다. “시집을 오니께로 으뜬 할매가 하리 오드만은, ‘아이, 각시는 참 좋그만은, 한 달이나 살까?’ 요래. 그래, ‘저, 뭔 소리, 저런 소릴 허는고’ 허구시는. 또오 뒷날, 또오 할매가 하나 아를 업고 오디만 또 그 소릴 허는 기라. 그래, ‘참 이상허다’ 내가. 그래구 또 한 메칠 있응께, 저 우에 인자 외사춘 동서가 오드만, ‘자네가 이 집에 살겄는가?’ 이래. (웃으며) 그래서, ‘왜 못 살아요. 살려고 시집을 왔는디 살아야지’ 내가 이른께로, ‘몰라. 한 달이나, 한 달이나 참을란가’ 요래. 그래서, 대차 한 달을 딱 지낸께 고만 전장을 시작하는 기라, 할배가.” ‘할배’(시아버지)는 술주정이 몹시 심했다. 술을 마시면 으레 며느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정애 할머니는 화병이 들었는데 약이 소용없을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위로는커녕 “젊은 년이 화병에 걸렸다”며 타박을 했다. 남편에게는 전처 소생의 딸이 셋 있었다. 전처는 1년에 두 차례씩 찾아와 박정애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더 가혹하게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지는 법이었다. 강원도 평창군에 사는 함정자(78·가명) 할머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혼을 하면서 삶이 험난해졌다. 22살에 6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군 복무 중이었는데 제대 뒤 기술을 배워 목수로 일한 적이 있긴 했지만 일생 중에 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업은 투전판과 술집을 오가는 일인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 흉보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하다 아이를 유산한 채 열 달을 품고 있다가 사산한 적도 있었다. “죽은 애 낳은 기 뭘 그거 하다가 나와 댕기면 또 어떠냐고 또 야단치더라고 우리 시어머이가. 그래서 그양 그래고, 아이고, 참 이렇게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내가 건강한지 몰라. 죽는 건 팔자여. 그래도 아프지도 안 하고 여적지 참 살아 있잖아.”
20세기 며느리 사연과 다르지 않은19세기 여인들의 생애담이 민요로, 20세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구술을 정리한 글로 전승됐다면 21세기를 사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는 영상으로 보존돼 다음 세대에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TV에서 가족 갈등을 다룬 드라마는 오랜 스테디셀러다. 최근 MBN , 채널A , KBSW , KBS 등은 결혼한 남녀의 가족 문제를 다루며 고부 갈등을 단골 소재로 삼는다. 명절증후군, 남편의 외도, 시누이 혹은 동서와의 불화 등 시시콜콜한 가족사는 에서 할머니들이 쏟아낸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남과 결혼했다?!’ 편에 출연한 의뢰인은 며느리의 사생활을 무시한 채 안부 전화에 집착하는 시어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어머님이 저한테 늘 그러시거든요. 고부간에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친해야 하고 불만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세요. 근데 그것은 말뿐이고,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병원에 가실 일이 있었어요. 어디 아프시면 전화는 드리는데, 제가 회사도 다녀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애도 봐야 하고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못 드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날은 난리가 나요. 그럼 바로 신랑에게 전화를 하는 거예요. 왜 전화 안 하냐고. 아들은 전화 안 해도 되지만 며느리는 꼭 해야 한다고.”
‘고난 극복’ 구조 가진 영웅서사와 비슷비슷한 속사정이 되풀이됨에도 시집살이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사다. MBC 는 3월23일 ‘고부간의 전쟁’ 특집을 내보냈다. 진실탐지기까지 동원된 방송에서 출연자들은 가감 없이 속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배우 전원주는 “착한 아들이 결혼 뒤 며느리 때문에 변했느냐” “며느리가 미워서 이유 없이 야단친 적이 있느냐”는 말에 “네”라고 대답했고 진실탐지기의 ‘진실’ 표시가 깜박였다. 며느리 김해현씨는 “다른 사람이 시어머니였으면,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연락 없이 집에 오면 싫다”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은 적이 있다”에 “네”라고 답했다. 방송이 끝난 뒤 “가족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는 것 아니냐”며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아들 뺏긴 기분’을 토로하는 시어머니와 속앓이하는 며느리들의 담화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날 시청률은 10.1%로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인 KBS (7.3%)보다 높았다. 종편에서도 패널들이 나와 가족 문제를 토로하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데, MBN 는 3월23일 시청률 3.6%를 기록했다. 는 지난 2월2일에는 시청률이 4.8%까지 치솟으며 역대 종편 예능·교양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설전에 사람들은 왜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될까. 을 쓴 연구자들은 여성들의 시집살이 체험담이 서사적 짜임새를 견고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시집살이담을 포함한 생애담은 설화에 비견할 만한 모종의 담화적 관습”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성 생애담이 ‘고난-고난 극복’의 구조를 반복하는 영웅서사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신동흔 교수는 할머니들의 생애담을 실은 기록집을 출간하면서 “온몸으로 뼈저리게 삶을 감당해온 역정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눈물과 감동의 언어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겉으로는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거기 그들이 있는지조차 잘 눈에 띄지 않던 주름진 할머니들의 입에서 마음을 흔드는 삶의 언어가 흘러나올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여성의 생애담에 스며든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됐고,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드는 우리는 자꾸만 그 삶의 문학을 들여다보려 하는지도 모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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