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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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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1천만 관객 한국 영화 범람

등록 2013-03-16 01:01 수정 2020-05-03 04:27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자본의 철저한 계산+방송 지원+애국 정서=흥행’ 삼위일체
반면 독립영화 관객은 갈수록 줄어 반쪽짜리 르네상스
952호 크로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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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꽃피는 봄을 앞둔 2월, 한국 영화 점유율이 무려 82.9%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를 본 누적 관객이 1억 명을 넘어섰고, 지난 2개월 동안 2천만 명이 한국 영화를 관람했으니, 올해 한국 영화 2억 관객 돌파도 헛된 꿈만은 아닐 듯싶다.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영화시장 점유율 50%를 거뜬히 넘겼던 한국 영화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여파로 2008년 이후 40%대로 하락했다가 2011년을 기점으로 다시 50%를 회복했다. 그리고 지난해 의 대박으로 시장점유율이 58%로 수직 상승해, 한국 영화는 다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의 1천만 관객 돌파와 700만 명을 훌쩍 넘긴 의 선전, 그리고 하반기에 예정된 대작들을 고려해보면 올해 한국영화 흥행은 역대 최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한-미 FTA 체결로 영화산업이 쪽박을 찰지 모른다던 우려와 달리 이렇게 한국영화가 잘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한국 영화가 구조적으로 잘나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가 있다. 먼저 투자자나 제작자들이 영화 흥행 코드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다. 감독은 어떤 점에서 잘 차려진 흥행 밥상에 그냥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 물론 감독과 배우들이 제작자에게 놀아나는 식물형 허수아비는 아니다. 탁월한 연출력, 감각 있는 장면의 배치와 편집 능력, 그리고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력이 흥행 수준을 좌우한다. 다만 투자자와 제작자가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과거처럼 감독에게 무조건 맡기다가 흥행에 완전히 참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안전 장치가 늘어났다.

냉정한 자본,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의 논리가 영화계를 무한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 적자생존의 체질 개선을 이뤄낸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게으른 감독, 흥행 코드를 못읽는 감독은 냉정한 자본의 철퇴를 맞는다.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대형 자본이 안정된 제작 여건을 만드는 사이, 영화시장의 정글의 법칙은 한 치의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 영화 대박을 위해 아낌없는 홍보도우미 역할을 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의 상부상조 정신도 대박 흥행의 기름칠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일본 영화 산업계도 부러워하는 국가 영화산업 진흥정책과 할리우드 영화는 불법 다운받을지언정 한국 영화는 제 돈 주고 보겠다는 국민의 애국 정서가 가미돼 한국 영화는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빌리면 ‘자본·국가·네이션’의 삼위일체가 한국 영화 흥행의 토대가 된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영화 대박 흥행은 상업영화로의 극단적 쏠림 현상을 강화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독립예술영화는 총 230여 편에 650만 관객을 동원했다. 2012년에는 365편으로 늘어났지만, 관객 수는 오히려 34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가 잘나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를 못 나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독점 시장 나쁜 균형

3대 제작·배급사가 영화산업 지배하고 영진위는 방조
관객도 ‘값싼 문화생활’에 익숙한 고객으로 만족해
952호 크로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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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와 제목마저 헛갈리고 심지어 제목의 일부를 바꿔 검색해도 신기하게 결과가 같은 이 역대 최단 기간 한국 영화 흥행 스코어를 갈아치우는 신기록 행진 속에, 이 글이 나갈 때쯤이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톱5에 등극할 기세다. 이 영화의 흥행을 지켜보며 ‘대중의 선택은 언제나 의미를 갖는다’는 말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개인의 선택은 언제나 뚜렷한 행위 목적 속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그 집합으로서 대중이 한 선택 역시 불분명한 행위 목적의 덩어리로 외부 변수에 의한 불가피한 경우인 상황이 많다. 한국 영화의 흥행 스코어는 대체로 그러해지고 있는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영화적 의미가 아닌 작품 밖의 요소들이 흥행 스코어를 결정하는 상황이 너무 잦고 그 강도 역시 세지고 있다. 되묻고 싶다.

에 어떤 특별한 영화적 의미가 있는지. ‘범작’에 불과한 이 영화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봐야 할 만한 문화적 ‘현상’인지는 정말 회의적이다.

그래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대한 설레발이 난무하는 지금이야말로 스크린쿼터제 폐지 이후 영화 시장이 맞은 일종의 ‘나쁜 균형’ 상태가 아닌가 싶다. , 그리고 을 거치며 영화산업의 나쁜 균형이 확실히 고착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한국 영화는 CJ·롯데·쇼박스의 3대 제작·배급사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는 구조다. 3대 제작·배급사의 점유율은 아무리 수세적으로 잡더라도 한 해 개봉 영화의 절반 이상이다. 은 3대 제작·배급사가 아닌 ‘NEW’가 배급해 화제를 모았지만 이 역시도 제작과 투자 단계까지 추려보면 3대 제작·배급사 영화의 일부일 뿐이고, 이 흥행 기록을 세우는 요즘도 2개 회사의 배급 점유율이 80% 가까이를 점했단 점에서 마찬가지다.

제작과 배급이 특정 기업에 의해 장악되다보니 관객 수 확대가 공학적인 마케팅 대상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CJ는 자사 계열사인 뚜레쥬르에서 빵을 사면 영화표를 주는 마케팅을 했다. 독점 상영을 통해 장악한 배급 시장을 기업내 다른 상품과의 연계를 통해 안정적 흥행으로 연결짓는 방식이다. 부당 내부거래라고 볼 소지가 충분하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영화진흥위원회는 속수무책이다. 영화를 문화로 바라보는 관점과 공공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중요해진 영진위는 이를 전혀 규제의 대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문화 생활에 속하는 영화 관람에서 관객은 냉정한 취향의 선택자라기보다는 기업의 마케팅에 휘둘리는 속절없는 ‘고객’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왜 멀티플렉스에 가도 볼 게 없는지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보단 남들만큼이나 세련된 소비를 자신도 하고 있단 착시를 영화관에서 찾는 데 만족한다. 완벽하다. 이 나쁜 균형 속에서 1천만 영화는 계속 탄생할 것이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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