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를 좋아하냐고? 아니 사랑했다. 그런데 포기하기로 했다. “육식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 수요를 감당하려면 고통스럽게 사육되는 동물들이 있다. 또 동물들을 살찌우기 위해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도 먹지 못하는 곡식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더라. 지나친 육식은 부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부터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밝힌 채식의 이유다. 2013년 새해에 채식을 결심한 나의 이유와 같다.
결심처럼 미덥지 못한 것 없음을 나이 먹으며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집회에서 흔하게 ‘결사투쟁’이라 외치는 구호를 잘 따라하지도 않는다. 결의하고, 결사하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도 없는 세상이다. 그저 열심히만 살자고 소심하게 다짐할 뿐이다. 그런데 71억 인구가 1년에 한 번씩 공약을 남발하는 새해에 채식을 결심했다. 나를 믿지 못하기에 지인들에게 “나는 이효리와 같은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확 발표했다. 다리 2개, 4개달린 고기만 안 먹을 것인가, 생선과 유제품까지 안 먹을 것인가는 차차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만만하지가 않다. 육고기만 피하려고 해도 먹을 것의 범위는 좁다. 고기 육수를 식단에서 빼보니 외식은 불가능하다.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고기는 생각보다 많았다. 이토록 많은 고기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육식을 포기한 순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메뉴 범위만 좁아진 게 아니다. 채식에 대한 나의 태도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이기 때문에 함께 밥 먹는 이들은 적어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고기를 피해달라고 요청할까? 그래야 고기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직접행동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관계는 까칠해지고 취향이냐 정치냐를 논쟁하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아직은 범위를 정하기 전이라는 핑계를 대고 생선과 유제품은 대충 흡입하지만 젓가락질할 때마다 스스로 느끼는 따가운 시선을 먹는 건지, 그리 생각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좌충우돌 채식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사실 요즘은 사람의 비명만으로도 벅차다.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 삶의 끈을 놓는 것을 번연히 보는 마음을 추스르기도 벅차다. 이런 마당에 동물들 비명까지 들렸다. 햄이거나 베이컨, 뜨끈한 사골 국물에 불과했던 그들이 산 채로 매몰되는 순간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마블링이 화려한 꽃등심을 만드느라 평생을 우리에 갇혀 살고 죽어가는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겁났다. 독한 항생제, 방목지로 파헤쳐지는 열대우림, 지구를 오염시키는 유기 배설물을 나부터 줄이기로 했다.
“연민만 베풀기를 그만두기”그래서 그냥 다 듣기로 했다.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와 돼지의 울음소리도 듣고 조류독감으로 학살당하는 닭들의 슬픔도 보기로 했다. 외면하지 않고 다른 생명의 고통 앞에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수전 손태그의 에서 말한 대로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하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것”을 실천하기로 했다. 이제 내 인생에서 순대와 감자탕은 사라졌다. 그러나 공존의 영토는 넓어졌다. 불편하겠지만 자꾸 평수를 늘릴 계획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