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테면 너는 스스로도 모른 채 대통령이 되어, 광장으로 끌려 나온 거야. 사람들은 대통령을 대하는 마음으로 너를 한껏 비웃었지. 대통령도 아닌 너는 슬펐겠지. 2011년엔 한 예술가가 ‘쥐 대통령’을 그렸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어. 대통령이 나빴는데 왜 너희들이 고생일까. 권력은 멀고, 동물은 가깝다 정도가 이유가 될까. 2016년 겨울, 서울 광화문광장.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에는 인간의 착취에 반기를 든 동물의 혁명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혁명은 단호한 것이라던가. 돼지 나폴레옹은 반란을 주도하며 인간을 추방하고 ‘동물 7계명’을 선포한다.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은,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를 지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로 완결된다. 해방을 쟁취한 동물들은 감격에 겨워 환호한다.
혁명의 본질은 지속 불가능이라고 말하듯, 혁명의 미래는 변질이라고 비웃듯, 해방 세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폴레옹은 경쟁자 스노볼을 추방하고, 다른 동물들을 혁명 지속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한다. 개들을 풀어 불만을 잠재운다. 혁명선언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게’ 수정된다. 여섯 번째 계명이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로, 일곱 번째 계명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두 발로 걷는 것들과의 거래가 시작된다.
‘동물농장’은 오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냉전시대 공산주의 소련의 부패를 고발하고, 자유진영(?)을 옹호하는 소설로 이해와 오해를 거듭했다. 하지만 독재 돼지 나폴레옹이 스탈린만의 비유일까. 히틀러를 불러와도, 박정희를 데려와도, 트럼프를 끌고 와도 ‘동물농장’의 주연과 조연들은 아귀가 맞는다. 그 점이 이 책을 뻔한 선전소설로 읽지 않게 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 사실이야말로 다른 동물과 인간 동물 사이에 깊은 강을 흐르게 한다지만, ‘자원의 재분배’를 놓고 벌이는 정치 인간의 투쟁은 때론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 없이 펼쳐진다. 정치는 어디 가고, 본능만 난무한다. 그 까닭이었나. 박근혜는 장수 티브이(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보며 통찰력을 얻었다고 한다. 공룡부터 호랑이, 진돗개, 토끼, 물고기까지 숱한 동물을 들먹여 사람과 정치 상황을 설명하는 대통령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닭이라 불렀다.
최고 권력자와 동물을 연결 짓는 일은 동서고금에 흔하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은 신라 48대 경문왕이 아닐까. ‘삼국유사’에 두건 만드는 장인이 왕의 비밀을 숨기다 못해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 직후에 쓴 시 ‘기도’에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과 쐐기에게 쥐에게 살쾡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라고 썼다. 시에 불려 나온 못된 짐승들은 남은 이승만들이자, 다가올 박정희들이 아닐까. 전두환은 문어로 통했다. 노태우는 노가리라 불렸다. 김대중은 홍어, 노무현은 코알라였다. 이명박은 쥐였고, 박근혜는 닭이었으며, 윤석열은 멧돼지였다. 무엇이 통쾌하고 무엇이 불쾌한가. 무엇이 풍자이고 문학이며, 무엇이 혐오일까. 권력자를 향한 동물 풍자에 경계는 없어야 한다, 이 말은 무조건 옳을까, 어디까지만 옳을까.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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