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때 아버지는 아침마다 삼남매를 일찍 깨웠다. 순번대로 세워놓고 아버지가 정한 가훈을 외치도록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버지는 꽤나 열심이었고 우리는 묵묵히 그 요구를 수용했다. 상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대기업 노동자였지만 대졸자가 아니었기에 승진이 늦었다. 아버지의 직급을 물어보는 담임선생님에게 ‘대리’도 아니었던 ‘참사’라는 직급을 말했다. “그게 뭐야. 나이가 있는데 그것밖에 안 돼?” 담임선생님의 무심한 대답이 가슴을 찔렀다. 오래전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겹겹이 둘러싸인 신분의 벽 앞에 아버지는 번번이 좌절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 자식들은 마음먹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의 새끼는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투성이의 삶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나이를 먹었다.
노동자 아버지는 퇴근길에 들고 오던 튀긴 통닭의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떠오른다. 유일한 수입원인 아버지의 노동 덕분에 우리는 풍요롭진 않았으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며 살 수 있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노동은 일상을 지켜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아니, 우리의 생존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는다.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를 전원 복직시키겠다고 한다. 쌍용차 비극의 13번째 희생자로 기억되는 임무창씨는 무급휴직자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죽기 전인 지난해 4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고, 1년이 되지 않아 부모 모두를 잃은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통장 잔고 4만원과 카드빚 150만원이었다. 회사가 복직을 약속했던 2009년 8월에 약속을 지켰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 경호원을 대동해 술집 종업원을 인근 야산의 공사장으로 끌고 간 아버지.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아라”며 집중적으로 폭행했다는 아버지, 한화의 김 회장. 그는 이후 회삿돈 수천억원을 배임해 또다시 구속됐지만 얼마 전 건강 상태 악화를 이유로 풀려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기획재정부의 내부 문건에는 “과도한 기업범죄 처벌은 기업가 정신의 후퇴, 투자 심리 위축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힘있는 아버지를 지켜주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힘이 없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외게 하던 나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그와 똑같이 닮은 노동자들도 떠올린다. 복직하는 동료들의 등을 쳐다보며 더 많이 외로울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고공 송전탑에 있는 그들의 차가운 잠자리가 걱정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1월26일 쌍용차로 향하는 희망버스가 시동을 건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이건 무엇인가 하는 배신감을 소주로 달래는 이들이 모일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이들이 모일 것이다. 부서져 깨졌으나 흩어지지 않고 열린 마음들이,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당연히 더 가지려고 하는 자들의 탐욕을 이길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버지의 주문은 상당히 강력했다. 중년의 당신 자식으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다짐을 또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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