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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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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틈조차 없는 세계

등록 2012-08-21 18:05 수정 2020-05-03 04:26

우리는 스마트폰 노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카페에서 연인과 함께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 친구를 만나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도대체 왜 만난 것일까? 트위터 팔로어가 늘어날수록 한편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왜일까? 실제 흐르는 시간과 같은 시간을 일컫는 실시간(實時間)은, 이런 의미에서 실시간(失時間)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자발적 선택으로 말살한 프라이버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비단 시간만은 아니다. 인터넷, 트위터나 페이스북,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을 시도하는 우리는 외로울 틈조차 없다. 알랭 투렌과 더불어 현대 유럽 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동녘 펴냄)에서 우리가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동안 외로움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온라인으로 늘 연결돼 있는 “당신은 즐겁게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창밖을 응시하면서 당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과 아주 가까운 주변에 있는 진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멀리 있는 친구들이 접속하려고 버튼을 클릭해올 때 과연 누가 정작 가족과 이야기하기를 원하겠는가.”

우리가 놓친 그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다. 다시 말해, 고독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인 셈이다. 홀로 외로움을 건너온 사람만이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듯이.

밀실의 고독 대신 유리벽 속의 삶을 사는 대중에게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무심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며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익명의 대중에게 중계한다. 그 과정에서 사적 비밀이 서식할 수 있는 시공은 지워진다. 비밀이 사라진 사적 공간은 프라이버시를 위협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유일하고,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주권이 유지되는 지대이자, 바로 그처럼 주권을 지닌 사람들의 왕국”인 프라이버시가, 권력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말살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프라이버시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로 직결되고 이는 바우만이 개념화한 ‘유동하는 근대 세계’(liquid modern world)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갈등을 중점 연구했던 바우만의 문제의식은 1990년대부터 탈근대로 옮아왔다. 사회주의가 탈근대의 기획이 아니라, 또 하나의 근대화 프로젝트였다는 그의 대표적 언설은 마르크스주의자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이동해온 그의 지적 궤적을 대변한다. 64살 때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1989)라는 책은 그 정점에 자리한다. 아도르노의 영향이 또렷했던 그 책에서,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근대성의 산물로 이해했다. 2000년대에는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돼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용어인 ‘유동하는 근대 세계’ 시리즈로 또 한 번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우만은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유동하는(액체적) 근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대체할 제2의 근대 개념으로 이를 창안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펴냄) 표지.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펴냄) 표지.

‘시시포스’ 아닌 ‘프로메테우스’를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앗아간 유동하는 근대에서, 사람들은 인간적인 유대를 잃고 부박한 관계 속에서 외로워한다. 그 허기를 달래고자 사람들은 소비를 한다. 그러나 쇼핑도 우릴 구원하진 못한다. “풍족할 수 있을 만큼만 날마다 물건들을 제조해서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날마다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우리는 사물과의 유대나 정서적인 만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바우만은 쓸쓸하게 말한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가 추구하는 진정한 열정”은 “무엇인가를 없애고 처리하면서 쓰레기처럼 버리고 폐기하는 즐거움이다”.

과연 유동하는 근대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가 강요한 굴레에 과감히 저항하려면 자신과 마주하는 일을 넘어 타인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홀로 무겁게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가 아니라, 타인들의 비참에 맞서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글의 제목,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처럼.

악의 평범성, 세대 간의 대화, 인스턴트 섹스, 유행, 건강 불평등, 신종플루, 경제 불황 등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44가지 문젯거리를 편지 형식에 푼 이 책은, 불확실한 안개 속 세상을 비추는 한 석학의 통찰로 번뜩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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