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관리를 철저하고 정직하게 할 것, 절약할 것, 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노동규율을 엄수할 것 등 부르주아지가 착취계급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숨기기 위해 부르짖었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비판했던 슬로건이 부르주아지 전복 이후 곧바로 혁명운동의 슬로건이 됐다.”(레닌)
‘혁명의 역설’에 맞선 게바라의 고투
마르크스의 예견과 달리, 사회주의혁명은 경제적으로 낙후한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났다. 낮은 생산성, 빈약한 축적, 봉건적이고 독점적인 권력 집중으로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인민들이 더 나은 세상을 가능한 한 빨리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혁명을 지지했다. 이윤이 노동자 착취의 산물이라는 것은 혁명가들에게 공리와도 같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 착취자가 제거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역설에 봉착했다. 모든 이윤을 노동자에게 돌려줘도 가난이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저발전 문제는 단지 착취 때문이 아니라, 생산이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가 약속한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방법들, 다시 말해 높은 노동강도, 효율성, 낭비와 나태의 척결, 엄격한 노동규율을 그대로 차용했다. 혁명의 역설이었다.
체 게바라도 쿠바혁명 이후 이 역설에 봉착했다. 영국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자 헬렌 야페의 은 이 역설과 맞선 게바라의 고투를 기록한 책이다. 책에는 그동안 혁명가 혹은 낭만주의자의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경제관료로서의 게바라의 지적 혁명이 고스란하다.
1959년 쿠바혁명으로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몰락했다. 민족주의혁명으로 시작한 쿠바혁명은 1961년 사회주의혁명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한 재건이 남아 있었다.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배 이후 단일작물경제(설탕)를 바탕으로 한 쿠바 경제는 수입의 95%를 미국에 의존하는 종속체제였다.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 실업, 고용 불안정 등 총체적 경제문제를 떠안게 된 혁명정부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그 가운데 게바라가 있었다.
1959년과 1961년 사이 그는 산업부흥부장으로 토지개혁을 일궜고, 쿠바중앙은행 총재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쿠바를 반봉건적 저개발국에서 독립한 사회주의 블록국으로 전환하는 구조개혁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비에트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해석되고 사회주의 블록에 적용되는 방식에 의구심을 가졌고, 소련의 교조주의를 비판했다. 1966년 소비에트 정치·경제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소련이 뼈를 깎는 강력한 정책 변화를 수행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고 예견한 것도 그였다. 그의 이런 성향은, 1961년에서 1965년까지 산업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군대·정치·경제 분야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예산재정시스템(BFS)이라는 경제관리시스템을 수립· 발전시키는 데로 나아간다.
소비에트 경제체제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수정안인 이 시스템은, 이론과 실천이 긴밀히 결합된 산물이었다. 즉, 계획과 재정(예산)은 중앙집중화해 통제·관리하지만 생산 관리와 유통은 분산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작동을 억제하고 생산현장의 노동자에게 자율적 참여를 보장하고자 하는 시스템이다. 한편 이를 보완하려고 자율배정시스템(AFS)도 동시에 도입했다. 각 생산 단위에 재정 자율성을 부여해 생산과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미국 기업들의 선진 생산관리 기법을 토대로 만든 이런 예산재정시스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아주 독특한 경제제도였다.
‘완전한 인간’의 사상가적 면모
결과적으로 쿠바가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저발전 국가에서 사회주의 이행기에,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식과 사회관계의 형성을 통해, 어떻게 생산능력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게바라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 연구, 당대 사회주의 정치·경제 논쟁 개입, 기술이나 관리 측면에서 앞선 자본주의 기업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게바라의 영향은 거시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녹색 의료, 니켈 생산, 원유 탐사, 설탕 부산물, 화학산업 등 9개의 연구·개발 기구를 설립했다. 또 회계 처리를 전산화하는 실험을 했고, 새로운 임금체계를 고안했고, 노동자의 발명 및 혁신을 장려했고, 농업 기계화를 진두지휘했고, 사회적 노동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했고, 사회적 임무로서의 노동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노동자 경영 참여를 위한 기구를 설립했다. 하지만 비록 이것들이 오늘날 쿠바의 사회·경제 구조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고안하고 도입한 게바라의 기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편람, 각종 보고서, 개인 소장 자료, 내부 회의 필기록과 게바라와 함께 일한 혁명 동료 60여 명의 육성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영원한 혁명가를 넘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 ‘완전한 인간’의 사상가적 면모를 일깨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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