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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최소한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의 우화집에 나오는 농부는 더 많은 땅을 가질 욕심으로 하루 종일 40km의 땅을 뛰어다니다 결국 탈진해서 2㎡의 구덩이에 묻혔다. “천하의 큰 집이라도 밤에 누워 잘 자리는 8자 방 한 칸이면 충분하다”는 의 말을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 면적은 5.76㎡, 한 칸의 땅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 근교 월든 호숫가에 14㎡ 면적의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구 크기를 넘어서는 사변을 풀어놓았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최소한 확보해야 할 주거면적도 14㎡다. 2004년 최소 주거면적을 12㎡로 고시한 이후 처음으로 올려잡은 것이다. 그동안 사람도 살림살이도 꾸준히 몸집을 키운 때문이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50)·노은주(42)씨는 여기에 부엌과 화장실을 더해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 공간은 18㎡, 5평 반 남짓이라고 추산한다. 18㎡를 넘어서는 공간부터는 각자의 공간감과 가족의 소통을 반영하는 여백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욕망의 크기를 줄인 43㎡의 작은 집
지난 8월 임형남·노은주씨는 충남 금산에 43㎡ 면적의 작은 집을 지었다. 26㎡ 마루를 덧댔지만 집이 들어앉은 2천㎡ 넘는 터에 비한다면야 터무니없이 작은 집이다. 방 두 칸에 이어 학생들이나 동네 사람이 모일 마루까지 나란히 놓인 일자형 금산주택은 “단순하면서도 작지만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소통을 이루려 한 점이 돋보였다”는 평을 들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을 받기도 했다. 집의 모델이 된 것은 퇴계 이황이 직접 지은 도산서원이다. 퇴계가 57살 되던 해에 짓기 시작해 5년 만에 완성한 도산서원은 4.5칸짜리 작은 집이지만, 1만 권의 책을 쌓아두고 많은 후학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단다. 마침 집을 짓겠다고 부부 건축가를 찾아온 건축주도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자였다. 121㎡짜리 전형적인 전원주택의 설계도를 찢고, 작고 단순하게 지을 것을 권유했다. 부족해지면 퇴계의 후학들이 그랬듯, 훗날 더해 지으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모델하우스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집을 짓다 보면 내 생활,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다. 집은 그렇게 넓을 필요가 없다. 하나를 크게 짓기보다는 집들을 별채처럼 엮어나가는 옛 방식을 쓴다면 집도 사람에 맞춰 자란다.”(임형남) “나이를 먹으며 여지껏 맨날 갖고 다니던 것들이 대부분 쓸모없는 것임을 느끼게 되죠. 나한테 꼭 필요한 것만 추려보면 어깨의 짐이 가벼워져요. 작은 집은 크기가 작은 집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집이에요.”(노은주) 당장 있지도 않은 쓰임새를 고려하는 삶은 욕망의 크기만 키운다. 멀티 기능의 가전, 거대한 가구처럼 존재하기는 하되 나와는 관계 맺지 못하는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라면 105㎡, 단독주택이라면 82㎡는 넘어야 한다는 상식을 깬 집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유지비’라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10년 전에 동호인 주택 붐이 일어 그때 지어진 거대한 전원주택들이 애물단지가 됐다. 당장의 생활보다는 자식들과 손자까지 찾아올 것을 기대하며 거하게 짓고 나니 유지비와 노동이 커졌고 쉽게 팔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국산업개발(주)이 충북 충주시 가금면에 지은 ‘충주 아리 주말농장’은 46㎡ 규모의 목조건물이 모인 전원주택 단지다. 13㎡ 다락방을 더해도 60㎡를 넘지 않는 작은 집이다. 아리 주말농장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주로 50~60대의 은퇴 세대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집 장만에 열심이다가 이젠 떨어진 집값 때문에 노후를 걱정해야 할 세대로, 유지비가 적은 집을 선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1년 전부터 이곳 농장에서 살고 있는 김애니(57)씨는 33평 아파트에서 집을 줄여 이곳으로 이사온 뒤 생활비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공간이 줄어들어서 불편할까 걱정했는데, 앞뒤로 둘러선 산이 모두 내 집 같아서 오히려 넓어진 느낌이란다. 아파트에서는 찾기 어려운 공간감이다. 월 10만원 정도로 관리비를 줄였다. 남과 북으로 마주 보는 창을 크게 내서 햇빛과 바람이 씽씽 드나드는 금산주택도 처음에는 찾는 사람마다 난방비를 어찌 감당하겠느냐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크기를 줄인 덕에 유지비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 1시간 정도 보일러를 돌리면 밤새 추운 줄 모른단다. 무엇보다도 낮에는 넓은 마루 덕에 찾아드는 동네 사람의 온기가 만만찮다.
“집이 작아지니 할 일이 넓어졌다”
금산주택을 지은 건축가 임형남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닫힌 곳만 집이라고 여기게 돼요. 내부 지향적 삶에서는 실내 면적만 따지죠.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가 넓어지면 집이 아무리 좁아도 답답하지 않습니다. 면적 개념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공간을 낭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공간은 평면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개발에는 좌파도 우파도 없는” 한국에서 국민주택 규모의 면적과 평면에 맞춰 살지 않으려면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금산주택은 한옥식 접이문을 달아 열어놓으면 트인 방이 되고, 닫으면 벽이 되도록 공간을 나눴다. 학생들이 찾아와 이야기하고, 마을 사람들이 놀고, 가끔은 공연도 하는 금산주택의 마루는 외부로 트인 넓은 공간이다.
작은 주택에 사는 사람은 한결같이 “집을 작게 하니 할 일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김애니씨는 이사 온 뒤 항상 마당의 텃밭에 나가 있단다. 같은 마을에 사는 20여 가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문화생활을 할 거리가 가까이 있지 않다는 불편 정도는 사철이 쉽게 찾아드는 변화무쌍한 이곳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도심의 집, 넓은 집을 고집하는 생각이 바뀐다”고 했다.
임형남·노은주씨는 광주 무등산 자락에 52㎡ 면적의 작은 집을 또 짓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관장인 황영성 화백이 작업실 겸 머물 집이다. “15평 집이라고 하니까 비좁을까봐 집주인이 걱정을 많이 했죠. 막상 골조를 올리고 나니 생각보다 많이 넓다고 하시더라고요.” 집이 작게 느껴지지 않으려면 자연과의 트임이 필수적이다. 광주의 작은 집에는 옥상과 나무 데크에 무등산의 연봉을 바라볼 수 있는 쉼터를 마련했고, ‘무돌’(무등산 돌)을 닮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할 예정이다.
도심의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까?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는 수목건축은 얼마 전 서울 연희동에 넓은 베란다가 딸린 기숙사를 선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나 외국인 유학생들이 살 곳을 찾는 이 동네는 독채를 임대하기 마땅찮은 형편의 사람들이 주로 고시원 같은 집에 깃들곤 한다. 수목건축이 지은 ‘마이바움’이라는 집은 5층짜리 건물에 9.9~16.5㎡(3~5평)짜리 작은 방 47개가 들어와 있다. 살림을 하기엔 영 옹색하고 혼자 누워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질 만한 넓이다. 그런데 방마다 방 크기의 반이 넘는 작은 베란다를 달았다. 탁 트인 전망은 없지만 의자와 테이블을 내다놓고 앉으면 하늘과 넉넉히 통하는 공간이다. 이 집의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부족한 살림 공간의 문제를 ‘공용’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방마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붙박이장으로 짜넣고 1층에 공용 주방과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는 66㎡ 넓이에 33㎡ 규모의 테라스를 더했다. 답답한 방에서 나와 옆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책을 읽거나 스터디 모임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거공간은 작게 하되 공동 주방, 거실, 세탁실 등 공용공간을 넓게 하는 일본의 ‘셰어하우스’ 형식을 따른 것이다.
낭비 없는 공간과 여유로운 면적 사이 어딘가에 우리 가족의 몸에 꼭 맞는 집이 있을 테다. 혹독한 땅값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서울에서도 공동건축으로 맞춤형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 성미산 자락에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1호’가 집들이를 했다. 9가구가 모여 함께 지은 집이다. 대표를 맡은 박흥섭씨는 “집 지을 때 드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집과 삶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건축가 이일훈씨가 입주자들의 요구를 조절하는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이일훈씨는 “도심에 공동주택이라는 형식은 많지만 실제론 건축에 공동성이 부족했거나, 있더라도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동주택다운 공동주택은 무엇일까?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은 입주자들이 1천만원씩 더 내서 2층에 공동체 방을 만들었다. 주방도 있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도 있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들러서 밥을 해두면 나중에 온 사람이 먹고 함께 치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종일 어울려 논다. 옆집 사람들도 놀러 오고, 늦게까지 술자리가 벌어지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46.2㎡에서 112.2㎡까지 형편에 따라 9가구의 집 크기는 모두 다르다. 어느 집이나 예전 살던 집보다 전용공간은 줄어들었지만 이웃과 나누는 공간이 크고 따뜻해서 불편하지 않단다. 박흥섭씨도 56㎡ 집으로 이사 오며 갖고 있던 가구며 짐을 모두 버렸다. 6개월이 지났지만 버린 짐이 아쉬운 적은 없었다. 언젠가 쓰일까 해서 이고 다니던 묵은 짐을 버린 대신 새 이웃을 얻었다. 9가구의 내부는 모두 다르다. 어떤 집은 다락방이 있고, 어떤 집은 복층이다. 밖에서 볼 때도 어느 집 하나 같은 창문, 같은 단면이 없다. 건축가이자 는 환경 에세이를 쓴 이일훈씨의 조언대로 층층마다 베란다에 텃밭과 나무를 들여놓았다.
501호 지니네는 46.2㎡의 좁은 집이지만 미니 아파트처럼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갖췄다. “4살 아이에게 형제 같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이 집에 들어온 윤상석(35)·안진희(43)씨 부부는 집안 살림을 대폭 구조조정했다. 가구는 모두 없앴다. “들어와보니 우리가 살 곳이 여기였다.” 부부는 칠순까지 살겠다고 했다. 이 집에 들어서면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1호 골목을 조금 더 따라 올라간 자리에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2호’가 착공식을 했다. 12월7일엔 3호 입주자들이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소통과 공유를 통해 행복하게 살 자리를 마련하려는 작은 집 주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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