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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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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우리에게 보낸 코미디

〈개콘〉 ‘사마귀 유치원’과 ‘비상대책위원회’로 돌아온 사회풍자 코미디들…
무력한 현실을 재확인하는 냉소와 체념
등록 2011-10-26 17:34 수정 2020-05-03 04:26

TV에 사회풍자 코미디가 다시 돌아왔다. 의 ‘사마귀 유치원’과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표주자다. 두 코너 모두 첫 방영부터 폭발적 반응이 나왔다. ‘사마귀 유치원’의 2회 ‘국회의원’ 편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코미디언 최효종이 말하는 국회의원 되는 법을 들어보자.

서늘하면서도 적나라한 냉소

“어린이 여러분,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아주 쉬워요. 좋은 대학을 나올 필요 없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국회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판사를 하면 돼요.”
판사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며 “사법연수원에서 상위 10% 안에만 들면 된다”고 한다. 판사가 된 뒤에는 “집권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되는데,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된다. 선거유세 때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이랑 악수만” 해주면 되고, “평소 안 먹던 국밥을 좀 먹어주면” 된다. 또 “상대 진영 약점만 밝혀내면 되는데,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면 하나는 나온다”는 말도 덧붙인다.

‘사마귀 유치원’. 한국방송 제공

‘사마귀 유치원’. 한국방송 제공

‘사마귀 유치원’은 내용과 형식의 반전이 기본 골격이다. 순진무구한 유치원에서 냉혹한 사회의 법칙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 코너를 관통하는 정서는 뭘까. 바로 냉소다. 마치 그루초 막스의 재담처럼, 누구나 아는 어떤 사실을 순진한 척,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목조목 까발려 보인다. 서늘하면서도 적나라하다. 를 보러온 관객이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처음 알게 되어 웃는 것은 아니다. ‘맞아, 국회의원은 저랬지’ 하는 재확인의 웃음이다. 타인이 속물임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냉소의 본질이다. “니가 고상한 척해봐야 속으로 무슨 계산 하는지 뻔히 보이거든!”

지난 10년의 한국이 ‘비상대책위원회’

또 하나의 신생 코너 ‘비상대책위원회’는 10분 안에 테러범의 범행을 저지해야 하는 경찰본부장과 군 간부의 탁상공론을 그린 일종의 상황극이다. 테러범의 범행 장소는 매번 바뀌지만 10분 안에 절대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경찰 본부장(김원효)은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현장이 얼마나 통제하기 힘든지를 설명한다. 이 코너의 핵심은 순전히 김원효의 ‘신 내린 입담’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부산 사투리에 박진감 넘치는 현장 묘사, 그 현장이란 곳은 시민들이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현장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절복통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언제나 마무리는 “어떻게 10분 안에 해결해? 야, 안 돼! 못해!”라는 절규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사태 해결에 무능한 군·경찰 간부의 모습을 그리기에 일견 관료제에 대한 풍자로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삶의 어느 순간 벌어진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한 우리의 무력감과 체념에 관한 서사, 바로 그것임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그 느낌을 알고 있다. 우리의 꿈과 희망과 계획과 미션과는 전혀 관계없이 우릴 정신없이 쥐고 흔드는 낯선 타자들에 대한 망연자실한 무력감. 1997년 외환위기부터 시작해, 미국과 유럽에서 터져나오는 금융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은 10년 넘는 동안 대한민국은 바로 ‘비상대책위원회’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야, 안 돼! 못해!”를 숨죽여 외쳐왔던가. ‘비상대책위원회’가 많은 공감을 얻으며 심지어 일선 경찰들까지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기력한 현실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하며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 사회풍자 코미디의 주된 정서였던 교훈적 해학과 골계의 정서는 이렇게, 무력한 현실을 확인하는 냉소와 체념으로 옮아간 것으로 보인다.

‘비상대책위원회’. 한국방송 제공

‘비상대책위원회’. 한국방송 제공

그렇다고 냉소와 체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있다. 의 최고 인기 코너라 할 수 있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 보여주는 각종 애매한 상황, 예컨대 ‘아가씨와 아줌마 호칭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은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풍자다. 그러나 애매한 상황을 정리하며 최효종이 하는 말, “우리끼리의 약속이에요”는 결국 새로운 합의 또는 타협을 통해 어떻게든 현실을 봉합하고 견뎌내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전형적인 ‘집권 말기의 신호’

방송 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춘추전국시대를 열기도 했던 최근 10년 동안에도, 1980년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네로 25시’처럼 오랫동안 장수하며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사회풍자 코미디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요 몇 년간의 사회풍자 코미디가 과거의 그것과 가장 다른 점은, 실존인물을 곧바로 연상시키는 상징과 은유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 성대모사도 별로 없다. 대부분 주어 없는 술어이거나 특정 직업군 전체를 싸잡는 언급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전례 없이 위축된 점과 무관치 않다. ‘MB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외압이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워낙 더러워서’ 지레 피해버리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동혁이형’이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같은 풍자 코미디의 이른 폐지를 둘러싸고 외압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사회풍자 코미디가 바람을 타기 시작한 것은 전형적인 ‘집권 말기 신호’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사회풍자 코미디의 정서에서 감지된 미묘한 변화들은 이를테면 ‘시대가 우리에게 보낸 신호’인 것이다.

박권일 사회비평가·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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