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모르는 것은 전혀 모르지만, 아는 것은 조금 안다. 이를테면 당신이 한 번 포기한 적 있는 대상은, 절대로 포기 못할 대상이 다시는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포기할 때, 절대로 포기 못하겠다는 그 마음까지 함께 포기한 것이므로. 그러므로 한 번 포기한 대상을 다시 포기하는 일은 처음보다 훨씬 쉬워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399번째 책을 냈다. 곧 400호 기념시집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어느 출판사가 33년 동안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이건 좀 놀라운 일이다. 이 시리즈의 1번인 황동규 선생의 시집 (1978)를 다시 꺼낸다.
서른 살이 넘은 이 시집을 나는 15~16년쯤 전에 읽었을 것이다. 접혀 있는 여러 쪽 중 하나를 펼쳤더니, 이런 대목에, 아마 감탄의 흔적일 어떤 표시가 남아 있었다. “지금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기./ 사랑, 그 엄청나게 흐린 날/ 거리 가득 눈 퍼부은 저녁/ 차(車)들이 어둡게 막혀 있는 거리/ 갇힌 택시 양편에 죽마(竹馬) 붙이고/ 세차게 뛰는 엔진 감싸안고/ 양 옆구리에 단 죽마 짚고/ 겅중겅중 뛰어가기./ 앞이 막히면 좌우로 뛰기./ 그대 팔을 들면/ 사랑, 그 조그만 서랍들을 모두 열고/ 엉켰던 핏줄 새로 빨며/ 흐린 구름 뚫고/ 함께 떠오르기./ 눌렀던 춤이 튀어오른다./ 지금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기.”(‘사랑의 뿌리’ 2절)
운문에서 종결어미는 중요하다. 명사구를 종결어미처럼 사용한 이 선택이 당시 내게는 신선했다. ‘춤처럼 튀어오르는’ 사랑이 이 선택 안에도 있었다. “이 밀물도 되고 썰물도 되는 세상에서/ 인간처럼 살려한 것 용서하시압.”(‘초가을 변두리에서’) 같은 문장에서 이 시인이 ‘~시압’이라는 공고(公告)형 어미에 쓸쓸한 뉘앙스를 부여한 것도 빛나는 사례다. 곳곳에 배어 있는 유신 말기의 비린내가 이 시집의 역사성을 증명하지만, 탄식할 때조차 활달한 언어들은 이 시인의 개성을 증명한다. 말을 부리는 타고난 재능을 암울한 시대도 진압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암울함에 맞서는 길 하나를 언어만큼은 끝내 암울해지지 않는 것에서 찾았던 것일까.
“땅 밑에서 잠자는 모자들이 올라올 때/ 모자에 영향을 미칠게요/ 모자의 테두리가 허용되거든/ 깨어나기 직전의 머리를 끄집어내요// 무거운 눈꺼풀을 끄집어내요/ 8월은 조용하게 말할 수 있어요// 잠든 집들이 올라올 때/ 알려지지 않은 합창을 다시 시작하려 할 때/ 지붕 위로 손들이 올라서기라도 하면// 도시 및 도시 근교의 유효기간에 어울리는/ 커다란 잠의 아침으로/ 어느 여름의 아침이 개방적일게요/ 어느 눈길을 끄는 주장에 둘러싸일게요// 소식이 늘어나지 않는 곳에서/ 사실들이 늘어날 것을 제안할게요// 그리고 짧은 확신에 갇혀/ 큰 모자를 날려 보낼 겁니다./ 머리를 끄집어내요/ 모자를 본떠/ 머리가 생길게요”(‘8월의 아침’ 전문)
399번으로 나온 이수명 시인의 시집 에서 옮겼다. 다시, 종결어미는 중요하다. 이것은 이 세계가 삶에 강요하는 모든 상투적인 종결의 방식을 거부하겠다는 시인들의 권리 주장이다. ‘추측’이나 ‘의문’이 어울릴 자리에 ‘의지’(~할게요)를 집어넣은 선택 덕분에 이 시는 ‘8월의 어느 아침’에 시인이 느꼈을 어떤 긍정의 기분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흔히 그러듯이 이 ‘시인선’의 모토를 ‘자유’라고 할 수 있다면, 1번과 399번 역시 그렇다. 1978년의 시집이 모든 것이 억압돼도 상상력만은 끝내 자유라는 역사적 증거라면, 2011년의 시집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시대에 점점 빈곤해지는 우리의 상상력을 위한, 은밀할 정도로 겸손한 ‘영양제’다.
한 나라의 상상력의 영토는 국가 총면적보다 넓다. 이 400권의 시집이 품고 있는 상상력의 나라는 최소한 남한의 면적보다는 더 넓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시보다 중요한 것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건 좀 쓸쓸한 일이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시집 읽는 이를 보면 (한 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지만) 반가워서 무작정 말 걸고 싶은 걸 참았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어졌다. 최근 어딘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말의 ‘같이’는 like와 with의 뜻을 함께 갖는다. 뭐든 당신과 ‘같이’ 하면 결국엔 당신‘같이’ 된다는 뜻이겠지.” 늘 시와 같이 살면 시와 같은 삶이 될까, 안 될까. 우리는 영원히 시를 ‘포기’하지 말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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