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들이 싫다. 아픈 노인이 싫고, 가난한 노인이 싫고, 외로운 노인이 싫다. 도대체 그런 노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워서 화가 나기 때문이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데 노인이기까지 하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나. 토마스 만이 ‘희극과 비참’이라고 요약한 이 인생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살아낸 결과가 결국 아픔과 가난과 고독이라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나.
장대송 시인이 9년 만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를 읽다가 나는 또 저런 노인을 만나고 말았다. ‘한 시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시의 끝에는 이런 주석이 붙어 있어서 시인이 이 시를 쓴 계기를 알게 한다. “갑신년 늦가을 불교방송 십육 층에서 칠십대 노인이 투신했다.” 갑신년이라면 2004년이다. 기사를 검색해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죽음을 기억한다.
“칠십대 노인이 방송국 십육 층 계단 통로에서 창을 보다/ 발걸음들이 분주한 통로에서 허공에 둔 시선이 부서지다// 죽음을 보는 무표정과 살이 낀 내 표정이 마주치다/ 수산시장 바닥처럼 두꺼운 입술이, 끝까지 가보라고// 그림자가 살 거푸집을 질퍽한 곳에 옮기다”(1~3연) ‘그림자가 사는 거푸집’인 육신을 어찌할까 생각에 잠긴 노인이 방송국 16층에 서 있다. 시인은 마침 그와 마주쳤던 모양이다.
“한 시간이 지나 가을비처럼 떨어지다/ 피의 장난이다// 주황색 피가 하늘 한편에 비 묻은 작은 노을을 만들다/ 소방 호스로 뿌린 물에 핏방울이 튀어 노을비로 떨어지다/ 바닥에 닿기 전 눌변으로 파르르 떨다// 등 굽은 할머니는 일수 찍듯 향을 꽂다”(4~6연) 노인은 그곳에서 한 시간을 보낸 뒤에 가을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직접 보지 못한 그 장면을 시인이 상상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이 나를 후려친다.
“칠십 년은 시간이 사람을 가지고 놀고/ 사람이 산 시간은 겨우 한 시간/ 한 시간은 칠십 년보다 길다// 시간은 죄다 장물이다”(7~8연) 칠십 평생을 다만 시간에 끌려왔다. 아내와 자식을 위해 사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은 죽음을 결심하는 데 걸린 그 한 시간뿐인가. 그렇다면 그는 칠십 년을 “장물” 다루듯 전전긍긍하다가 겨우 한 시간을 살다 간 것인가.
물론 슬프지만, 슬프기만 하자고 옮긴 시가 아니다. 릴케는 (1910) 도입부에 이렇게 적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겠다는 소망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갖겠다는 소망만큼이나 드물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저 노인의 마지막 한 시간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자신의 죽음을 죽는 순간 그는 진정으로 산 것이니까. 이런 짐작이 노인의 마지막 마음과 다르다 해도 말이다.
“비 그치자/ 녹천역 근처 중랑천 둔치에 할멈이 나와 계시다/ 열무밭에 쪼그려 앉아 꿈쩍도 안 하신다/ 밤에 빨아놓은 교복이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다림질할 때처럼/ 가슴속에 빈 쌀독을 넣고 다닐 때처럼/ 젖은 마당에 찍어놓고 새벽에 떠난 딸의 발자국처럼 앉아 계시다/ 비 그치면/ 노을에 묶인 말장처럼/ 열무밭에 앉은 왜가리/ 기억이 묻은 마음 때문에/ 물속만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시다”(‘왜가리’ 전문)
이 시가 그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저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하며 나는 또 한숨을 쉰다. 중랑천 둔치에 왜가리처럼 앉아 있는 할머니는 지금 물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나밖에 없는 교복을 다림질하던 여학생 시절을, 가슴속에서 빈 쌀독이 덜컹거리던 배고팠던 시절을, 다 커서 새벽에 조용히 집 떠난 딸을, 그러니까 자신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슨 권리로 한숨을 쉬는가. 생이 대체로 ‘희극과 비참’이라면, 그런 생을 칠십 년 동안 견뎌왔다는 것이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옳을까. 서두에 했던 말을 취소하기로 한다. 내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노인들을 싫어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은 패자가 아니다. 노인들은, 노인이 되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승자다. 나는 세상의 모든 노인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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