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르포의 위치는 애매하다. 알다시피 서구에서는 문학 분야가 ‘픽션/논픽션’으로 구분된다. 문학의 범주를 가능한 한 넓게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꾸로 말하면, 사실에 근거하는 논픽션에서도 문학적 요소가 존재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창 시절 이래로 우리에게 익숙한 구분법은 ‘문학/비문학’이다. 문학의 범주를 최대한 넓게 잡고 그 안에서 픽션과 논픽션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범주를 최대한 좁게 잡고 그 외의 것은 비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밀어넣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다.
서구의 분류법하에서 르포는 수필, 자서전, 평전, 여행기 등과 함께 논픽션 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하위 장르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문학과 비문학을 가르는 한국적 분류법하에서, 일차적으로는 비문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어야 하지만 추가적으로는 문학적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 르포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가 곤란해진다. 비문학으로 분류되면 문학적 요소를 평가받을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하게 되고, 문학으로 분류되면 또 그쪽의 기준에 의해 문학적으로는 부족한 데가 많은 글쓰기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인 것이다.
이 이중적 정체성 때문에 문학평론가들이 르포를 대할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르포에서 일차적인 것은 팩트와 관련된 비문학적 요소라는 입장을 택하게 되면, 르포 텍스트를 평가하는 일은 문학평론가의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다. 이와 다르게, 르포문학의 고전들은 탁월한 문학성을 갖고 있으니 당대의 르포들에도 당연히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면, 행여나 자신의 그런 작업이 르포의 다급하고 절실한 취지에 냉담한 ‘문학주의자’의 젠체하는 트집처럼 보일까봐 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평론가가 공지영의 르포 (휴머니스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렇긴 해도, 이 텍스트의 ‘다급하고 절실한 취지’에 대해서는 많은 지지가 쏟아지고 있으니, 이 르포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논평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논평들을 모아본다면 아마 ‘르포문학’으로서의 이 책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르포문학의 힘은 무엇보다도 해당 사건의 본질을 누구보다 더 깊게 알고 있는 저자의 강력한 텍스트 장악력에서 나온다. 공유된 사실에서 미답의 진실을 끌어내는 힘 말이다.
이 책에 그것이 있는가? 충분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 이 세상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는 이의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는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을 것이다. 책에 밝힌 대로라면 저자가 쌍용차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겨울 어느 날’이다.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취재와 집필이 모두 완료됐다. 그만큼 다급했을 것이다. 그러니 6년 동안 쓰인 트루먼 카포티의 나 인터뷰에만 1년이 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같은 책들을 기준으로 이 책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그 대신 저자는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하고, 인용에 기꺼이 의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진솔하게 아연해하고, 혹자들은 감상적이라고 할 만한 문장들을 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단점들이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수많은 분이 함께 만들었다”는 저자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지만, 이 책을 끌고 가는 겸허한 목소리는 확실히 이 작가의 것이다. 이 목소리가 르포에 대한 독자들의 부담감을 눅이는 데 성공했다. 저자의 이름값만으로 책이 이렇게 팔리지는 않는다.
부기. ‘인용 논란’도 이 책의 이런 독특한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책 후반부에 출처가 있으니 도용 운운은 당치 않지만, 유독 그 한 부분만 본문 내의 출처 설명이 빠져 문장의 주인이 헷갈리게 됐다. 독자의 ‘감정의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그랬다던가. 촉박하게 쓰인 탓에 르포로서의 밀도가 옅은 원고에 힘을 싣기 위해 정서적 울림을 높이려고 했으리라. 이 선택에 악의가 있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되풀이 지적하는 일로 이 소중한 책에 대한 다른 모든 토론을 대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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