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회는 신상 문화들이 뜨는 공간이다.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섞이는 곳이다.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브로콜리 너마저, 좋아서 하는 밴드 등의 퍼포먼스와 연주가 오랫동안 민중가수 자리를 지켜온 꽃다지, 연영석의 노래와 섞이고, 무키무키 만만수 같은 정체불명 ‘캐발랄’ 밴드들이 대학생 율동패들과 한자리에서 공연한다. 무키무키 만만수, 허클베리핀, 연영석 등을 만나 그들이 현장에서 시민들과 눈맞춤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선동하거나 아니거나2인조 여성밴드 무키무키 만만수. 숙연한 집회를 흥겨운 난장으로 만드는 이름이다. 아니 구호다. 이들이 뜨면 “무키무키 만만수!”를 외치는 팬들이 시위대에 섞여든다. 멀리서 구경하던 시민들도 바짝 다가선다. 이게 무슨 난린가 해서다. 부산에서 열린 2·3차 희망버스 문화제가 그랬다. 8월21일 그들을 만난 서울 여성가족부 앞 소금꽃 공동투쟁단 문화제도 그랬다.“기타도 장구도 잘 못 치지만/ 우린 잘할 거야 괜찮을 거야/ 가늘고 길게 갈 거야/ 우린 무키무키 만만수!”(중)
무키무키 만만수는 벼락처럼 등장했다. 기타를 치며 청아한 고음을 구사하는 만만수(23)와 드럼처럼 개조한 장구를 두드리며 폭발적인 소리를 내지르는 무키무키(23)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다. 지난 5월13일 영화 동아리 돌고지비스타소셜클럽이 연 ‘쓰레빠 음악회’로 데뷔했다가 깜짝 스타가 됐다. 서울 홍익대 앞 두리반에서 명동 마리, 영도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섭외 행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맞춰보니까 폭발적이고 이상한 음악이 돼서 우리도 깜짝 놀랐어요.”(만만수) “장르가 뭔지 저도 궁금해요. 제가 뽕짝을 좋아해서 처음엔 뽕짝이라고 했는데 듣는 사람은 포크록이라고도 하고. 록이라고 불러주면 저도 좋아요.”(무키무키)
무키무키 만만수는 거리의 정치적 시위와 홍대발 문화운동이 접속하는 아이콘이다. 무키무키는 홍익대 청소노동자 농성을 계기로 두리반을 찾았다가 두리반의 아티스트가 됐다. “두리반이나 명동 마리에 있는 친구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게 사건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환호하고 춤추고 길을 점거하고 난리가 나요. 이렇게 한바탕하는 게 농성장에서 보지 못했던 문화죠.”(무키무키) “클럽보단 투쟁 현장이 적성에 맞는다”(만만수)지만, 대신 나 를 부르며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그들은 ‘민중가수’라기보다는 ‘자생적 문화 테러리스트’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아이고)/ 이렇게 운동만 하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는데/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하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투쟁성’이 적나라한 노래 의 가사다. 무키무키가 명동 마리 철거농성장을 지키다 가사를 썼다. “마리에 있는 애들은 만날 배고프다고 해요. 치킨 먹고 싶다, 피자 먹고 싶다 노래를 불러도 돈이 없어서 못 사먹어요. 운동하는 사람들을 다이어트시키는 세상에 대해 썼어요.”
23살 그들은 앞으로도 이렇게 쭉 갈 수 있을까? 음악이론을 전공하는 만만수는 얼마 전 영화음악에 참여했다. 지금은 송일곤 감독의 새 영화에서 음악 스태프로 일한다. 미술을 전공하는 무키무키는 지난 8월25일 명동 마리에서 ‘묵희 이발소’를 열었다. 삭발농성을 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 못한 사람들을 ‘혁명적인 장발 스타일’로 다듬는 의식이다.
“전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투쟁 현장과 연대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 음악이 투쟁하려고 만든 음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만만수) “진짜? 난 선동하려고 만든 노래들인데. 특히 같은 경우에는.”(무키무키) “무키무키 만만수라는 밴드는 그렇지 않단 말이지.”(만만수)
이기용·이소영의 2인조 밴드 허클베리핀은 한국 인디음악계의 필수 항목이다. 14년째 활동하며 5장의 음반을 냈다. 2008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받았다. 그런 그들이 특히나 촛불집회 이후 외출이 잦다. “많은 문화제와 집회에 갔죠. 주류가 비주류를 배제하는 방식이 졸렬한 게 싫었어요. 그렇다고 허클베리핀이 팔뚝질하면 얼마나 촌스럽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표정을 가지고 가요.”
허클베리핀은 음악적 자존심과 기개가 드높은 팀이다. 집회라고 해서 분위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지난 8월2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8·20 희망시국대회’ 무대에서도 그랬다. 얼마 전 나온 5집에 실린 를 불렀다. 그러나 늦어지는 집회에 밤 12시를 넘겨 무대에 올라도, 앰프가 말썽을 부려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콘서트 하러간 게 아니에요. 여러분을 지지하고 함께하겠다는 걸 보여주러 가는 거예요. 저는 절대 녹음된 반주음악은 쓰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어요. 그런데 단 한 번 사태 때 트럭 위에서 공연하며 그 철칙을 어겼어요. 좋다, 오늘은 녹음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자 했어요. 집회 때는 음향의 질을 따지지 않아요. 최고의 음악이 나오지 않더라도 선율과 진심이 통하면 사람들과 감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섭외 전화를 받지만 원칙은 단 하나 ‘정말 옳은가’이다. “9월3일 제주 강정마을 집회를 두고 고민을 좀 했어요. 해군기지가 다른 곳에 건설되면 어떨까, 지역 용주의 아닐까. 그때 마침 에 강정마을 기사가 실렸잖아요. 그걸 다시 꺼내서 읽어봤죠. 아직 완전히 납득은 안 되지만 공감하기에 갑니다.” “진보 진영을 격하게 지지하지만 휩쓸려다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허클베리핀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밴드다. 얼마 전 나온 음반 를 두고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통째로 퀴즈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세상과 싸우고 좌절하는 듯한 참여적인 가사는 사색적인 곡의 빛깔에 덮인다. “노래 를 만들 때는 서정만으로 만들었어요. 이 노래에 어울리는 감성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홍대 청소노동자 사태가 터진 거예요. 그 일을 담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고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위태로운 존재에 대한 문제기도 하고. 모호하게 다의적으로 씁니다. 제 노래가 쉽게 파악되기를 원치 않아요.” 허클베리핀은 ‘운동권 밴드’로 파악되는 것도 원치 않는단다. 8월27일 그들은 상식이 시키는 대로 4차 희망버스 공연에 합류한다. 그건 고집불통 길 밴드, 과격한 힘이 넘치는 연주, 서정적 멜로디, 수수께끼 같은 가사처럼 허클베리핀의 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
국내 최대 기타회사인 콜트·콜텍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내쫓고 1500일이 넘도록 부당해고를 지속하고 있는 업체다. 2008년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연영석씨가 음악산업의 맨 밑바닥에서 외롭게 싸우던 콜트 노동자의 손을 잡았다. “콜트 노조위원장이 양화대교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것을 보고 송경동 시인, 문화연대 등과 지지 모임을 만들었어요. 기타를 만드는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음악가들은 그 기타를 두드리며 노래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의식이었죠. 다른 음악가들을 끌어들이고 후원 콘서트를 하고 거리집회를 같이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 ‘노 뮤직 노 라이프’(음악이 없으면 인생도 없다)라는 콜트의 구호는, 연씨가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레 ‘노 워커 노 뮤직’(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이라는 구호로 탈바꿈한다.
소금꽃 공동투쟁단의 9일차 문화제에서 연씨를 만났다. “우리 햇볕 한번 봅시다.” 등 그가 부르는 노래는 오랜 농성에 지친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서강대 맑스코뮤날레 공연 때는 관객 한 분이 나와서 춤을 추다가 아예 마이크를 빼앗아 노래를 하더라고요.” 서울역 노숙인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는 그의 무대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최근 몇 달 새만 하더라도 KT 본사 앞 집회, 희망버스, 반값 등록금 문화제, 인천 산재해고자를 위한 거리문화제, 명동 들불장학회 거리모금 공연 등 수많은 현장에서 그의 노래는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그는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인디밴드와도 함께 연주한다. 그가 하는 이 수다한 활동 속에 연영석이라는 문화노동자가 산다.
그의 기타는 시대와 한 흐름을 탄다. 연영석씨는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가수다. 민중가수로는 유일한 대중음악상의 수상자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연영석씨는 민중가요의 동력이 사라졌나 싶은 시기에 돌연히 나타나 대중가요의 새로운 어법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중가요가 재생산을 멈춘 듯하면서 홀로 활동하는 그의 고민도 깊어졌다. “집회를 다니면 자꾸 짝사랑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채워지지 못한 갈증도 커서 홍대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뻘쭘했죠. 예비역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 촛불집회 할 때 ‘빵’에서 노래하던 밴드들이 거리로 나오고, 콜트 싸움도 그 에너지를 나눴어요.” 인디밴드와 소통한 경험과 현장을 지켜온 내공은 다시 연영석의 새로운 어법을 낳을까. 발표를 앞둔 노래 와 등은 선동보다는 공감을 위한 노래라고 한다. “2005년 3집 내고 아직 4집을 못 냈는데, 요즘 노래들을 좀 만들었어요. 늦어도 내년까진 다음 음반을 내려고 해요. 이번 음반을 만들며 제 노래의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음악은 따뜻해지고 소재는 삶에 더 천착돼 있는 음악이랄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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