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일 발표된 제16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은 장강명(36)씨의 (表白)이다. 이 책은 7월22일에 출간된다.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던 터라 프리뷰 형식으로 (그러나 스포일러 없이) 소개해드리려고 한다. 2011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죽어가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떤 세계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어떤 세계인가? 저자는 그것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부른다. 막막한 흰색으로 뒤덮여 있는 세계라는 것. 거기에 뭔가를 더하려 해도 그저 흰색에 흰색을 더하는 일(즉, 표백)이 될 뿐이어서 젊은 세대들을 무기력에 빠뜨리는 그런 세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지금의 20대를 저자는 ‘표백 세대’라고 부르고, 그 세대의 어떤 비범한 일원들(whydoyoulive.com)이 벌이는 파국적 저항을 그린다. 그것은 바로 집단 자살이다.
아마도 이 소설은 그 시의성 덕분에 ‘88만원 세대의 현실·울분·저항을 다룬 작품’으로 소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엄밀한 사회과학의 눈에는, 이 소설이 그리는 ‘현실’은 상식적이고 ‘울분’은 피상적이며 ‘저항’은 빗나간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근본적으로 우선은 철학적이다. 저 자살 논리의 뼈대가 되는 세 개의 명제부터가 그렇다.
첫째, 오늘날 세계는 완성됐다. ‘완성된’ 세계는 물론 ‘완벽한’ 세계가 아니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도록 모순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세계라는 뜻이다.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는 쌓이지 못한다.” 이 ‘완성된 세계’론은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이나 ‘최후의 인간’론의 냉소적인 변형처럼 보인다.
둘째, 그래서 삶은 무의미하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카뮈의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라는 저 유명한 물음을 실존주의의 맥락에서 추출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를 향해 다시 던진다.
셋째, 그러므로 자살만이 대안이다.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을 이끄는 키릴로프의 이른바 ‘논리적 자살’론, 즉 “나는 나의 새롭고 무시무시한 자유를 확인하기 위해 자살할 것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여하한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은 세계에서, 그 세계를 타격하고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자살 선언문을 발표하고 조직적으로 자살한다.
이 소설의 힘은 일단은 저 철학적 테제들의 힘에서 나오고, 궁극적으로는 이 테제들을 21세기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결합해 재가동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다면 1부 끝부분에 수록된 ‘자살 선언문’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관건은 이 소설이 저 3단계의 논리를 전복하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해내는 데 있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다. 작가는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저 파국적 논리에 맞선다. 작가의 반격은 저들의 거창한 논리도 실은 ‘위대한 일’을 벌여 앞뒤 세대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인정 욕망’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점을 논파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사소한 삶은 무가치한가? 아니다. 그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 누구의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자, 이것은 적절한 반박인가? 아니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처럼, 어떤 등장인물의 악마적인 논리가 그것과 맞서는 작가(혹은 그의 분신)의 대항 논리보다 더 매력적이어서, 그 악마적 논리가 작가에 의해 부정된 뒤에도 계속 독자를 사로잡는 일이 이 소설에서도 벌어진 것인가? 이에 대한 판정은 흥미진진한 독서 이후에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 여러 사람이 죽는 소설이다. 한 인물이 죽을 때, 다른 인물들이 반드시 울 필요는 없겠지만, 작가만큼은 몰래 울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편견이다. 저널리즘과 문학의 차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향한 뜨거운 애정에서 출발했을 이 소설에서 그 울음소리가 희미하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이 아쉬움을 굳이 감추지 않는 것이 내 환영의 방식이다. 논쟁적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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