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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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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찬 가벼움이 만들어낸 ‘기적’

중국인 이주노동자 남편과 다문화도서관 만드는 활동가 이소연씨…출자금 십시일반하고 버리진 가구 모아 기적 일구는 젊음의 낙관
등록 2011-05-05 14:34 수정 2020-05-03 04:26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하지 않는 일을 했다. 취직 대신 60만원 월급을 주는 지역 시민단체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장을 포기했다. 혼자 힘으로 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언어도 국적도 다른 타국의 남자와 결혼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한 거냐? 고민은 없었나? 심각한 체를 하려는 내게 이소연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젊어서 그랬나 봐요.”

인권활동가가 꿈인 고등학생

그 말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여전히 젊다. 겨우 28살이다. 젊디젊은 나이다. 그러나 이미 먹고사는 일로 세상 무서운 줄 알 만한 나이기도 하다. 무서울 게 없는 나이가 지났는데도 소연씨는 자신만만하다. 하는 대답이 모두 명쾌하고 가볍다. 기운찬 가벼움이다. 자기 인생에 확신을 품은 이가 갖는 가벼움의 무게다.

» 이소연씨는 결혼 이민자 자녀에게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주는 최선의 방법으로 다문화도서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26일 경기도 수원 화서동에 있는 임시 사무실에서 그녀가 책을 들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이소연씨는 결혼 이민자 자녀에게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주는 최선의 방법으로 다문화도서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26일 경기도 수원 화서동에 있는 임시 사무실에서 그녀가 책을 들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연씨는 좀 남달랐다. 물론 그녀는 자신을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저는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은데 그런 직업이 뭐가 있나요?”라고 물은 그녀다. 10년 전, ‘인권’이라는 말도 낯선 당시에 인권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녀는 자신이 사는 경기도 수원에 ‘외국인노동자쉼터’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제 발로 찾아온 고등학생 여자애를 보고 당황한 시민단체 활동가들 앞에서 그녀는 “앞으로 이런 단체에서 일하고 싶은데, 제가 뭘 준비해야죠?”라고 물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대학에 가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소연씨는 각 학과 커리큘럼을 일일이 살펴봤다. 다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녀에게는 중국지역학이라는 학과가 더 끌렸다. 마침 수원 지역에도 아시아 각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졸업을 1년 앞둔 대학 4학년 때 그녀는 학업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학과 공부가 자신의 진로에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졸업장은 필요하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그녀는 원치 않는 것을 배우며 한해 등록금 800만원을 내기가 아까웠단다. 대학을 떠난 그녀는 실전으로 뛰어든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일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원래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이 많던 터였어요. 그런데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 서울로 올라가서 일하는 거예요. 수원도 경기도에서 나름 규모가 큰 도시인데 문화 소외 지역이 돼요. 괜찮은 청년들은 다 서울 가서 일하니까.”

그녀는 수원 지역의 시민단체를 물색했다. ‘수원일하는여성회’(이하 여성회)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 2학년 때 자원봉사를 한 인연이었다. 그런데 월급으로 30만원을 준다고 했다. ‘88만원 세대’라는데 30만원은 심하다 싶었다. 머리도 식힐 겸 러시아로 자원활동을 떠났다.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1년 뒤 여성회를 다시 찾으니 월급이 60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2007년 12월, 취직을 했다.

그 월급마저 반이 월세로 들어갔다.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려니 마이너스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연히, 행복했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래서 25번째 생일, 그녀는 자신에게 생일선물을 하나 주었다. 이주민센터 자원활동을 신청한 것이다. 늘 하고 싶던 일을 자신에게 주는 것으로 선물을 했다. 여성회 일을 쉬는 일요일마다 그녀는 이주민센터 한글교육 강사가 됐다. 1년 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게 됐으니 다른 의미로 자신에게 선물을 준 셈이다.

“대학교 때 전공이 중국지역학이잖아요. 친구들은 전공을 결혼할 때 살렸다고 해요.”

그녀의 남편은 중국인이다. 소연씨가 한글교육 강사로 있을 당시, 지금의 남편은 한국에 일하러 온 6년차 이주노동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학급이 달라서 얼굴만 알고 지내다가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사는 지역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식사 약속이 잡혔다.

한글 배우러 온 이주노동자 제자와 결혼

“외국인하고 단둘이 만나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처음 만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걱정하며 나갔어요. 그런데 의외로 얘기가 잘 통하는 거예요. 저랑 관심사도 비슷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남자 뒤에 후광이 보이더라고요.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싶었어요.”

이야기가 통하니 국적도 언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첫 데이트에서 결혼을 결심한 소연씨는 남편의 비자 만료 시기가 다가오자 망설임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 오히려 주춤한 이는 남편이었다. 심지어 친한 이들에게도 혼인신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 신고 당일 증인이 필요하다는 주민센터 직원의 말에 소연씨가 급하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친구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 활동가 이소연씨가 다문화도서관에 놓일 책들을 분류하고 있다.

» 활동가 이소연씨가 다문화도서관에 놓일 책들을 분류하고 있다.

정식 결혼식은 이듬해 3월 중국에서 치렀다. 6개월간 중국에 머물며 신혼여행도 마쳤다. 행복하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이제 1년 갓 넘긴 신혼이다. 혹시 외국인 남편을 안 좋게 대하는 시선은 없냐고 물었다. 우려 섞인 말이 많을 듯한데, 막상 그녀에게 오는 반응은 호의적이다.

“오히려 ‘남편이 중국 사람이에요’라고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중국 남자가 살림을 많이 한다는데 좋겠다, 결혼하신 분들은 시댁 멀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문화적 충돌은 없나 궁금해하며 물어보는 분도 있고.”

“문화적 갈등이 있나요?”

“주변에서 문화 차이를 제일 많이 걱정하시는데 저는 별로 겪지 않았어요. 사실 한국 남자랑 여자가 만나도 성격이나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잖아요.”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성격을 알 만해서 질문을 돌렸다.

“결혼 잘한 거 같아요?”

그녀가 웃는다.

“남편이 집안일을 정말 잘해요. 요리도 저보다 더 많이 하고요. 남편 꿈이 요리사라 그렇기도 하지만 문화가 그런 것 같아요. 중국 시댁에 갔는데, 시부모님 두 분이 다 일하시고 오셔서 같이 요리하고 식사를 차리는 거예요. 그 모습이 저한테는 문화 충격이었어요. 요즘은 저희 엄마가 저는 내버려두고 ‘아들, 아들’ 하며 사위를 불러서 한국 요리를 알려주세요.”

신혼 재미, 남편 자랑을 하는 그녀다. 그러나 그녀가 신혼의 단꿈만 즐기고 있던 것은 아니다. 6개월 동안 중국 여행을 하며 그녀는 수원 다문화도서관 개관을 구상했다.

“남편을 알기 전부터 제가 다문화 쪽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결혼하기 전에는 일요일은 남편이 있던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토요일은 결혼 이민자 자녀를 대상으로 놀토 프로그램 교사 일을 했어요. 그 일을 하며 결혼 이민자 분들이 자녀 교육에 고민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자녀들에게 한글 교육을 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줄 방법이 없는 거예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면 내가 하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동화 플래시 영상이었다. “놀토 교사들이랑 결혼 이민자 분들이랑 모여 각 나라의 동화를 플래시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거예요. 아기가 동화 영상을 보면 엄마 목소리, 엄마 나라 언어가 나오는 거죠. 그런데 그걸 만들려면 동화책이 있어야 하잖아요? 경제적으로 사정이 괜찮은 일본 사람들은 자국에 가면 그림책을 갖고 오지만 동남아시아나 중국 사람들은 가진 책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도서관에 가서 빌려야 하는데 수원에서 제일 가까운 다문화도서관이 안산에 있는 거예요.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려서 단체로 갔죠. 그 먼 곳을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한날 모여 간 거죠. 막상 가서 저는 도서관을 그저 구경하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이주민 여성들이 아기랑 자기 나라 책을 읽으며 너무 행복해하는 거예요. 정말 좋았어요. 엄마 마음은 똑같잖아요. 자기네 나라 전래동화나 전통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고. 근데 20명이 가서 책을 5권씩만 빌려도 100권이 넘잖아요. 아는 사람 차도 빌리고, 제가 책을 몇십 권씩 들고 버스 타고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서 책들을 반납했어요. 이주민 여성들은 또 가고 싶어하는데 제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날 이후로 다문화도서관이 마음에 남았다. 그 마음은 결혼한 뒤 더 커졌다.

“그래서 안 되겠다, 수원에도 만들자, 생각은 했는데 비용도 있고 해서 엄두를 못 내다 결혼하고 중국에 몇 달 머물며 결심을 굳힌 거죠. 중국에 가 있는 동안 편하고 좋은데도, 말 통하는 친구가 없으니까 답답한 거예요. 제가 결혼 이민자 생활을 직접 하니까 그 사람들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거죠. 결혼 이민자에게 필요한 게 뭔지 말이에요. 그래서 오자마자 다문화도서관을 만들 생각을 한 거죠.”

한국식으로 치르기로 한 결혼식도 미루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부터 소연씨는 다문화도서관 일에 매달렸다. 이주민을 위한 일이라지만, 정작 그녀를 말린 이는 남편이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이 일부터 벌이겠다는 아내가 염려스러워서다. 그러나 그녀는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 있지만 이 일은 지금이 아니면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오히려 남편을 설득했다. 결국 남편도 그녀의 일을 돕게 됐다.

“한국어 책은 두 달 만에 2천 권 넘게 모였어요. 생각보다 빨리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이 된 상태고요. 이제 해외 도서를 1천 권까지 만드는 게 올해 목표예요. 그 나라 대사관 쪽에서 지원을 받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고, 그 지역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구하기도 하고, 결혼 이민자들이 한두 권 기증하는 것도 있고요.”

그러나 그 책들을 둘 땅 한 평 갖지 못한 부부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한 실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좋은 곳이 나왔는데 보증금이 500만원이래요.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부동산 할머니가 젊은 친구가 좋은 일을 한다며 보증금을 300만원으로 깎아줬어요. 책상이나 책장 같은 가구는 저랑 남편, 그리고 도서관 만드는 걸 도와주는 한국 친구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버리는 가구를 날라오고요.”

야금야금 하나씩 완성해간다. 뜻에 동의하는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 출자 형식으로 공동 투자, 공동 운영 방식을 꾀하고 있다. 1천만원의 출자금을 만드는 게 이들의 목표다. 갓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가난한 청년 백수들이다. 제 통장에 몇백만원도 없으면서 천 단위 출자금을 모으느라 분주하다. 누군가는 혀를 찬다. 자신들도 가진 게 없으면서 남 일에 돈을 쓴다는 핀잔이다. 다문화도서관은 지역에 꼭 필요한 공간이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면 내가 하겠다’, 이것이 소연씨의 생각이다. 그녀는 저녁에는 학원 강사 일을 하며 다문화도서관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언제든지 생긴다며 그녀는 경제적 어려움을 가볍게 넘긴다.

없는 대로 살아도 즐거운

그래도 걱정스러워 물으니, 답이 명쾌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녀는 신혼집 가구조차 그녀와 남편이 자취 시절 쓰던 것들을 그대로 두고 쓰고 있다. 없는 대로 살아도 즐겁다.

며칠 뒤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였다. 부부를 처음 보자마자 나온 말은 “닮았네”였다. 중국에도 “부부가 닮아야 잘산다”는 말이 있을까? 소연씨가 가정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남편 곽홍우(구어홍위)씨는 아내에게 장난도 치며 싱글벙글이다. 남편에게 부인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물으니, “자신감”이라고 한다. 어울리는 부부다.

수원=글 희정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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