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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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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설가의 소설 같은 삶

[KIN] 예술가가 사랑한 술/

하루 11병의 위스키를 마셨던 잭 런던
등록 2011-03-04 14:32 수정 2020-05-03 04:26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던 미국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병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코올중독자는 더 이상 아무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으며 어떤 친근한 이의 몸에도 기댈 수 없는 노인들이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육체적 고독은 그의 운명인 것이다.”
소설가들 중에는 유독 알코올중독에 시달린 이가 많다.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고독’이 그들로 하여금 더 지독한 문장을 쓰게 만든 것일까. 술꾼 소설가들은 때때로 자신의 소설에도 술꾼을 등장시킨다. 모파상은 단편소설 ‘술꾼’을 쓰고, 보들레르도 같은 제목의 희곡을 써서 술에 취한 이의 극단적인 감정을 보여줬다. “술이 민중을 잡아먹고 있다”며 알코올에 취하는 사회를 비판했던 에밀 졸라는 소설 에서 술로 인해 파괴돼가는 노동자들을 그렸다.

잭 런던(소설가)

잭 런던(소설가)

그리고 그 자신이 술꾼이자 인생 역시 한 편의 소설 같은 예술가가 있다. 잭 런던. 평범하지 않은 출생, 바닷바람이 부는 항구 도시, 최악의 가난과 최고의 부를 한 생애에 동시에 가졌으나 40살의 짧은 삶을 살았던 소설가. 런던은 1876년 1월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떠돌이 점성술사와 오하이오의 부유한 가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양아버지의 손에 길러졌으며 본명은 존 그리피스 체이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5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이어서 신문배달원을 하고, 베링해에서 바다표범 사냥을 하는 배에서 선실 사환으로 일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세상을 떠돌다 을 접하면서 공부를 시작해 캘리포니아대학에 등록하며 읽고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 27살에 출간한 첫 소설 으로 새 직업을 가지게 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스테디셀러인 의 주제는 ‘자유’다. 미국 남부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던 개 ‘벅’이 알래스카로 팔려가 썰매를 끌게 되면서 자유를 구속받고, 여기서 도망쳐나와 늑대 무리의 대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런던은 소설 밖에서도 자유를 갈구했다. 술은 평생 그의 해방구였다. 5살에 음주를 시작한 그는 자신의 고향 샌프란시스코의 항구에서 뱃사람과 술내기를 해 이기기도 하고, 짬만 나면 도둑이나 밀수업자 친구들과 술집에 가기를 즐겼다.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많은 돈으로 많은 술을 살 수 있었고 술을 나눠 마실 친구도 많아졌다. 특히 위스키를 좋아해 하루에 무려 11병을 마신 적도 있었다. 켈트어 ‘우식베하’(uisge-beatha)를 어원으로 하는 위스키는 어원의 뜻 그대로 런던에게 ‘생명의 물’이었다. 생명의 물을 근원으로 소설이 탄생했다. 마시고 취하며 작품을 쓰고 때로는 자신의 음주 경험을 소재로 삼았다. 알코올중독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이다.

재능 있는 소설가는 작가 생활 13년째인 1916년 자신의 인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죽고 말았다. 그러나 술기운이 밴 채 남은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고 취하게 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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