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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한 조각 안주 삼아

[예술가가 사랑한 술] 헤밍웨이의 샤토 마고와 모히토 /
등록 2010-12-01 11:35 수정 2020-05-03 04:26

소설 를 쓴 미국의 소설가 잭 케루악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술에 취해 극도의 흥분 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를 쓴 프랑스의 사상가 기 드보르는 “훌륭한 작품을 얻어내려면 오랜 시간 술을 마셔야만 한다”고 했단다. 예술가는 술을 마셔야 하는가, 술을 마시면 예술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 사이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글을 썼다는 것 외에 이 셋을 교집합으로 엮을 별다른 요소는 없는 듯하지만, 이번호 문화면에 실린 에서 말하는 ‘평행이론’을 빌리면 더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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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유명한 작품을 남긴 헤밍웨이는 술과 담배, 연애를 사랑한 이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종군기자로 활약하고 사파리 점퍼를 즐겨 입으며 바다에서 아들과 함께 커다란 청새치를 건져올리길 즐긴 이 터프한(!) 남자가 사랑한 술은 의외로 섬세하고 달콤한 술이다. 와인 샤토 마고와 칵테일 모히토.

1921년 의 유럽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머물게 된 헤밍웨이는 와인의 여린 느낌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다 차츰 와인의 매력에 빠지면서 “와인은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란 평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가 특히 즐긴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샤토 마고인데, 그가 샤토 마고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그의 손녀딸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다는 일화가 대신 말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국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한 손녀딸 마고 헤밍웨이 역시 할아버지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많은 재산을 술로 탕진하고 41살의 나이에 자살하고 만다.

모히토(mojito)는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말 ‘모조’(mojo)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모조는 마법 또는 마법을 걸 때 쓰는 소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름의 근원 때문일까. 헤밍웨이는 이 마법 같은 술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력을 느꼈다. 쿠바에 머무르던 때 헤밍웨이는 를 쓰면서 해가 저물어가는 붉은 하늘을 안주 삼아 모히토를 즐겼다. 모히토는 허브와 라임의 상큼함이 조화로운 술이다. 청량함 때문에 겨울보다는 여름에 어울린다. 럼에 라임즙과 민트잎을 찧어 넣고 설탕과 얼음을 넣어 만든 것이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쿠바식, 여기에 베이스를 테킬라로 바꾸면 멕시코식 모히토다.

맛이 좋아 한국의 여느 술집이나 카페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계절에 따라 딸기나 오렌지를 넣어 만든 ‘응용 모히토’를 팔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오리지널에 버금가는 응용 모히토를 만나지는 못했다. 헤밍웨이의 모히토는 선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 가면 만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자신에게 한결같은 모히토를 마시게 해준 선술집 주인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 있다”는 말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쿠바 여행자들이 빠지지 않고 헤밍웨이의 흔적을 느끼고자 그곳을 찾는다니 말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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