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의 키 작은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는 퇴폐와 쾌락과 절망이 뒤엉킨 세기말의 프랑스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파리의 몽마르트르를 가장 잘 기록한 화가다.
술과 미식을 즐겼던 로트레크는 가난한 예술가의 언덕에서 유일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이 없던 이였다. 그의 이름을 요약하지 않고 적어보면 이유를 눈치챌 수 있다.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 로트레크 몽파. 로트레크는 12세기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귀족 집안의 혈통을 타고났다.
승마와 매사냥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낸 로트레크의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자신의 아들도 같은 취미를 갖길 바랐지만 기대는 좌절된다. 로트레크는 선천적으로 부러지기 쉬운 뼈를 타고났다. 14살 때 가족과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로트레크는 걸터앉은 의자 아래의 빗자루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왼쪽 허벅지뼈가 부러진다. 그리고 몇 달 뒤, 어머니와 함께 산책에 나선 그는 길가의 도랑에 빠져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부러뜨리고 만다. 두 차례의 사고를 겪은 뒤 불행히도 성장은 속도를 늦춘다. 다리는 거의 자라지 않고 몸만 자랐는데, 그의 키는 152cm로 기록돼 있다.
평생 까마귀 부리가 달린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심취할 대상이 있다는 건 마음의 위안이 된다. 그림에 빠져든다. 1890년까지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밝은색을 띤 그림을 주로 그리다 나중에는 드가의 영향으로 화면을 분할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다 1885년 몽마르트르 거리에 정착해 자신만의 세계를 다진다. 물랭루주 등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무도장의 매혹에 휩싸인다. 쾅쾅대며 울리는 음악, 무희들의 역동적인 춤, 손님들의 웃음소리, 매춘부의 도발, 그 사이에 찌든 고단함과 외로운 감정까지 고스란히 그의 캔버스에 옮겨낸다. 무희들의 엉덩이를 그리고 드레스가 휘날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의 특징적 동작들을 지금 우리가 사진을 남기듯 그림으로 기록한다.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오르고 그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를 눈여겨보던 물랭루주의 주인에게서 광고 포스터 제작을 제안받는다. 로트레크는 무도장의 축제와 무희를 알리는 광고를 석판화로 새겨 찍어냈는데, 그의 표현법은 현재의 잡지 표지나 포스터 등에도 지속될 정도로 선구적인 것이었다.
술꾼들의 떠들썩한 웃음과 귀를 울리는 음악 한가운데서 그림에 천착했던 화가는 때때로 바의 구석에서 소음을 털어내며 한 잔 럼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음주 예술가들과 다르게 그는 술로 영감을 떠올리는 타입은 아니었나 보다. 알코올은 병약했던 그를 끝없는 파멸로만 이끈다. 1890년대 후반부터 로트레크는 그림보다는 술을 마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친구인 타데 나통송은 술을 먹는 동안의 로트레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끊임없이 웃으며 딸꾹질을 해댔다. 울음이 날 때까지 웃고 키득거렸다.” 키득거리던 술자리는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중독에 휩싸인 그는 때때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상상 속의 거미를 향해 권총을 쏘아대거나 경찰이 자신을 추적 중이니 친구 집에 숨어야 한다는 말을 뜬금없이 하곤 했다.
병약한 그의 몸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고 다리에는 마비가, 손에는 경련이 찾아온다. 죽음이 다가온 것을 예감한 듯 작품에 제작 연대와 서명을 적어넣고 얼마 뒤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다. 화가는 서른일곱 해를 살았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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