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미향
예술가가 모두 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술을 사랑하는 예술가는 많은 것 같다. 눈앞에 걸린 그림에서 취기를 느낀다거나 알코올 냄새를 잔뜩 품은 글을 읽은 기억들이 있을 터다. 어제 마신 술의 잔향이 다음날 아침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예술의 영역 곳곳에는 술의 향기가 배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당분간, 마실 수 있을 때까지, 예술가가 품은 알코올의 흔적을 좇아보기로 한다. 오늘은 맥주다.
딜런 토머스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국의 대시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시집이 없는 터라 글맛을 곰곰 씹으며 딜런의 시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에게 애정을 느낀 이유는 영웅적인 한 문장 때문이다. 영국의 소설가 로렌스 듀렐이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제 이 나라의 흑맥주 술병마다 딜런의 사진을 붙여야 할 것이다.” 딜런은 1941년 3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데, 죽음의 원인은 과음이다. 밤낮으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떨리는 손으로 글을 썼을 젊은 작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 예술가란 이런 존재란 말인가, 술을 마셔도 이다지 지독히, 다음 세대의 맥주병에 얼굴을 새겨 넣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끝없이 들이켜야 한단 말인가. 따라하기 힘든 딜런의 술 생활에 묘한 패배감을 느끼는 술꾼이라면, 그러니까 더 잘 마셔야 이긴다고 생각하는 승부의 술꾼이라면 좀더 현실적인 예술가를 찾아보자. 무엇보다 평소 운동조차 하지 않는 나는 그를 따라 했다간 어느 날 아침 영원히 눈을 감을 것 같다. 39살에 요절해도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는 작품을 남겨놓아 생이 아쉽지 않은 작가도 아닐뿐더러, 에헴.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 독자에게 인기도 많고 굳이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알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에세이집 에서 버드와이저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값이 싸지만 괜찮은 맥주이며 초밥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이 밖에도 그의 소설에는 심심치 않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평소 아침 일찍 일어나고 달리기를 즐기며 맛있는 맥주와 음식을 찬탄하고 재즈를 즐기는 건강한 중년이다.
다른 술보다 맥주라 하면 금세 마음이 부푸는데도 10년 맥주를 마시며 나도 나름의 취향이 생겼나보다. 두 작가가 사랑한 맥주를 좇아 마셔보자니 딱히 찾아 마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딜런의 흑맥주는 첫맛은 진하고 묵직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그야말로 너무 무겁다. 하루키의 버드와이저에서 쇠맛을 느끼는 것은 내 입맛이 이상한 탓일까. 올해 발견한 가장 맛있었던 맥주는 선배를 따라간 술집에서 맛본 캐나다의 맥주 앨리캣이다. 아른아른 과일향이 난다. 20대를 통틀어 가장 맛있었던 맥주는 인도의 해변에서 매운 새우 카레와 먹었던 킹피셔다. 앨리캣은 반갑게도 동네 맥줏집에서도 팔고, 인도의 국민 맥주 킹피셔는 세계 맥주를 다 놓고 판다는 맥줏집에서는 찾아보지 못했어도 인도 음식점에서는 종종 팔기도 한단다. 마감이 끝나면, 취향 없이 슈퍼에서 세일할 때 사서 냉장고에 묻어둔 카프리를 수면제 삼아 마실 예정. 앨리캣을 찾아 혼자 동네 맥줏집에 가긴 버겁고(맥주도 테이크아웃이 되면 좋겠다) 킹피셔는 당분간 추억으로만 두기로 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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