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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KIN] 예술가가 사랑한 술/
‘리틀 모차르트’, 앙드레 마티유
등록 2011-03-18 11:2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의 실제 주인공은 요절한 천재 음악가 앙드레 마티유다. 익숙한 이름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는 어떤가? 5살에 미뉴에트를 작곡한 모차르트처럼, 마티유는 5살에 자신이 작곡한 곡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뛰어난 연주와 작곡 실력에 놀란 음악비평가들은 “마티유가 모차르트를 능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는 마티유의 나이에 이 기적적인 소년처럼 위풍당당하고 멋진 연주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티유는 ‘리틀 모차르트’란 별명을 얻는다. 여기에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마티유가 자신의 뒤를 이을 작곡가라는 극찬을 더한다.

영화<앙드레 마티유>

영화<앙드레 마티유>

마티유는 192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가난한 작곡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기까지는 여느 천재 음악가, 베토벤이며 모차르트의 출생과 비슷하다(베토벤의 아버지는 실패한 테너이자 독일의 궁정음악가였으며 모차르트의 아버지 역시 오스트리아의 궁정작곡가였다).

그러나 생활고에 허덕이던 마티유의 부모는 가혹할 정도로 그의 재능에 의지한다. 부모 된 욕심으로 훌륭한 음악가가 되라고 다그쳤던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아버지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로 아들을 압박한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항상 말한다. “이 오디션에 모든 것이 달렸단다, 앙드레.”

부모의 절대적인 기대와 가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변덕스러운 대중의 반응으로 마티유는 점차 지쳐간다. 천재성 또한 함께 시들어갔을 것이다. 설상가상 사랑도 잃는다. 힘을 잃어가는 그의 음악성에 어쩌면 한줄기 희망이 됐을지도 모를 사랑을 어머니의 다그침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 오르고 오르겠다는 어머니의 의지와 달리 마티유 앞에 펼쳐진 건 내리막길뿐이다. 아래로 질주하는 일밖에 남지 않은 천재 음악가는 건반을 두드리던 손으로 술잔을 쥐었다. 앙드레 마티유는 39살의 나이에 자신의 음악 세계를 단 한 번도 자유롭게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친다.

지난 6개월간 술을 사랑한 예술가들의 궤적을 좇았다. 술을 즐기기로는 지면에 거론되지 않은 숱한 예술가가 더 있을 터다. 아름다운 음악, 그림, 언어 혹은 몸동작을 삶의 목표로 했던 예술가들은 창작의 샛길에서 마법 같은 음료를 마시며 위안과 즐거움과 감명을 얻었을 것이다. 찬미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무수히 택했던 것이므로 술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련다. 앞뒤 없는 성급한 논지라 할지 모르겠지만, 혹자는 예술가의 생을 단축한 술이 원망스럽다고 투덜대기도 할 테지만, 한 잔만 들이켜도 웃음과 위로와 우울과 외로움의 감정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이 액체를 아름답다 하지 않고 무어라 하겠는가.

마지막 지면을 채운 앙드레 마티유까지, 술을 사랑한 예술가들 중 유독 요절한 이가 많았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생이 짧다고 했다. 그러나 술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신의 물방울’은 신의 가호라도 받은 양 예외처럼 우리 곁에 남아 길고 긴 생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예술가가 사랑한 술’ 연재를 마칩니다. 예술의 갈피 사이에 숨은 또 다른 먹을거리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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