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책] 식민사관에 물든 주류 사학계를 고발함

친일 사대주의가 동북공정에 대한 침묵으로 이어지는 현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1만5천원 　　　　

중국 사회과학원의 에 만리장성을 표시해놓은 지도가 실려 있다. 거기 표시된 현재의 만리장성 동쪽 끝은 알려진 대로 요동반도 건너편 발해만 연안 산해관이다. 그런데 거기엔 또 하나, 중국인이 오늘날 주장하는 만리장성의 원형이라는 게 그려져 있다. 그 동쪽 끝은 압록강 하류를 지나 한반도 북부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다.

이병도의 기상천외한 논리　

사마천의 하본기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라는 ‘태강지리지’ 얘기를 전하는데, 그 낙랑 수성현이 황해도 수안이라고 비정(比定)한 사람은 실증사학을 내건 이병도였고 그것이 한국 주류 사학계의 정설이 돼 있다. 그런데 그건 일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소속 일본인 연구자 이나바 이와키치가 에 실은 ‘진장성동단고’(진 만리장성 동쪽 끝에 대한 논고)라는 글에서 그렇게 주장한 것이고 이병도는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이병도가 황해도 수안(遂安)을 낙랑군 수성(遂城)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오직 “수(遂)자가 같다는 것뿐”이다.

‘조선열전’에는 한나라가 “패수(浿水)에 이르러 (고조선과) 경계를 삼았다”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 패수가 압록강이라고 한 사람은 일본고대사 연구의 제일인자요, 일제 식민사학의 비조 쓰다 소우키치(1873~1961)였다. 쓰다의 충실한 사도 이병도는 한술 더 떠 패수가 청천강이라고 했다. 이병도는 기상천외한 입증 방법을 동원하는데, 예컨대 지리지에 낙랑군 속현으로 기록된 ‘둔유(屯有)현’이 황해도 봉산군 대방군 북쪽에 있는 황주라고 단정하면서, 그 근거로 지리지 황주목 조에 나오는 황주의 옛 고구려적 이름 동홀(冬忽), 또는 우동어홀(于冬於忽) 중 우동어홀의 중간 두 글자 ‘동어’와 ‘둔유’의 “음이 서로 근사”하다는 황당한 증거를 댔다.

횡재한 쪽은 중국이다. 그것은 한반도 상당 부분이 옛 중국 땅이었다는 그들의 주장, 곧 동북공정 사관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에서 지은이는 중국의 동북공정 사관과 쓰다의 식민사관을 ‘일란성 쌍생아’로 규정한다. 쓰다와 이나바, 이마니시 같은 아시아 침략에 동원된 일제 관학자들이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고 나 등 일본 사서들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허무는 김부식의 초기 기록 등 한반도 쪽 기록은 후대에 날조된 거짓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수다한 반증 자료들을 모조리 물리친 것은 바로 식민지배의 정당화를 위한 작업이었다. 이는 한반도에는 독자적 역량을 지닌 역사 주체가 없었다는 일제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제 식민사관은 한반도의 독자적 역사 주체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한반도를 중국이나 일본 역사의 부속물 정도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 사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중국 동북공정은 바로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도용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학계를 여전히 쓰다의 후예들이 지배하고, 결과적으로 동북공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 고대사 발굴 실적은 완전히 무시

한국 주류 사학계는 자국이나 중국의 옛 전적들을 살피기보다 그것들을 먼저 살피고 정리한 쓰다의 후예들 해석에 의존하고, 일제 관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북한 내 고대사 발굴 실적을 쌓은 북한의 연구 성과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한국 주류 사학계의 진정한 교주는 이병도가 아니라 쓰다 소우키치라는 자기고백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은이는 한국 주류 사학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사관이 있다며, 하나는 일제 식민사관이고 또 하나는 조선 후기 노론사관이라고 했다. 노론사관은 1623년 광해군을 쫓아낸 서인들의 인조반정에서 시작됐다. 성리학을 받든 존명반청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이후 노론, 노론 벽파로 이어지면서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300년간 나라를 말아먹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팔고 관작을 받아먹은 왕족 대다수는 노론이었고 그 후예가 일제 조선사편수회에 가담했으며, 광복 뒤에도 그들이 사학계 주류가 됐다. 그 유구한 전통이 존명 사대주의에서 친일 사대주의로, 그리고 다시 친미 사대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면 지나친 상상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