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질’이라는 걸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다른 팬을 만나 팬질의 구력을 겨루는 시간. 그러니까 “너 언제부터 우리 오빠 팬이었니?”다. 으로 김명민이 본좌의 경지에 오르자, (2000) 때부터 알아봤다느니 (2001) 팬이었다느니, 오라버니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침 튀기며 역사와 전통을 과시하였더랬다.
으로 만인의 연인이 된 ‘셰~프’ 이선균의 팬이라면 단연 그의 단막극 시절을 논하며 거품을 물리라. 나중에 미니시리즈가 된 (2003)에서 (2004)의 스토커, (2005)의 찌질한 고시생,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섬뜩한 사이코)으로 나온 (2005)을 거쳐, 후줄근해서 더 좋았던 연애 후일담 (2006)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들어도 다시 보고 싶은 작품 잔뜩이다. 물론 그 으뜸은 (2005) ‘동경이’겠지만. 이선균뿐이겠는가. (2004)이 없었더라면 엄태웅이 그렇게 슬픈 눈빛을 가졌음을 어떻게 알았으며, (1999)가 아니라면 황인뢰 감독의 영상 속에 소지섭과 전도연을 같이 보는 일이 가능이나 했겠나.
정말 고마운 ‘드라마시티’ ‘베스트극장’. 낮잠 많이 잔 일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에 코를 박았고, 그렇게 잘 짜인 단막극을 하나 보고 나면, 처음 현진건 소설을 접한 중학생처럼 서늘한 쾌감을 느꼈다. 거기서 만난 작가 이름을 외워두었다가 후에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면 괜히 뿌듯했다.
이러니, 근 2년 만에 한국방송에서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단막극을 부활시켰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기대에 부풀었는지는 짐작들 하실 터. 노희경 작가의 을 필두로, 토요일 밤 11시를 기다린 지 넉 주가 지났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도 있었지만, 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박연선 작가의 흥신소 2탄 처럼 짜릿한 녀석들도 있었다.
때로는 경쾌해서 좋고, 어떤 때는 찝찝해서 좋으며, 종종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해서 좋은 단막극의 ‘묻지마’ 팬이지만, 드라마에는 각 체급에 맞는 소재와 줄거리가 있기 마련이어서 1시간에 담으려는 내용이 너무 과하거나 구성에 밀도가 약하면 김이 빠진다. 말하자면 ‘체급’이 맞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안 맞으면 바로 안드로메다로 가는 것이다(한 나라 정부가 일개 시민단체가 국제기구에 낸 의견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처럼).
하여튼, “단막극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는 이선균처럼, 더 많은 ‘단막극의 아이들’이 나와 드라마 스페셜이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똥찬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가지망생들과, 아이돌 그룹 리더 말고도 재능 있는 신인들이 얼굴을 알리고, 그래서 광고도 더 많이 붙고, 미니시리즈로 다시 제작되는 작품도 늘고… 그렇게 그렇게, 단막극이여 영원하라, 팍팍!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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