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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 착 감기는 진한 국물맛



구수한 충청도 생선국수·달착지근한 전라도 팥칼국수·돼지뼈 푹 고아 만든 제주도 고기국수
등록 2010-06-10 16:57 수정 2020-05-03 04:26

“국수를 먹을 때 중국인은 함께 끓인 채소와 고기 등 건더기를 먹고, 일본인은 면을 먹고, 한국인은 국물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충북 옥천의 ‘생선국수’는 이 말 그대로 육수 맛으로 먹는 국수다. 면을 먹기 위해 육수를 낸 게 아니라 육수를 먹기 위해 국수를 말아 먹는 음식이다. 예로부터 금강 줄기에 놓인 충북 옥천·영동,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지에서는 생선국수를 주로 먹었다.

생선뼈 흐물거릴 정도로 끓여낸 국물이 보약

생선국수

생선국수

“천렵으로 잡은 붕어, 메기, 누치 등을 푹 곤 국물에 쌀을 끓여 어죽으로 먹다가 국수를 넣어 먹은 게 지금의 생선국수”라고 전하는 서금화(83) 할머니는 옥천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국수집인 선광집의 주인이다. 62년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생선국수로 팔남매를 키워냈다. 지금은 막내딸과 독일로 유학 갔던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며 주방에서 함께 일한다.

선광집은 금강에서 잡히는 자연산 민물고기만 사용한다. 어업면허를 가진 어부 3명이 민물고기를 대고 있다. 매일 새벽 4시30분부터 육수를 끓이는데, 오전 10시30분이 돼야 육수가 준비된다. 몇백 가지 생선을 곰탕 끓이듯 푹 고아내는 육수는 끓이는 시간만 족히 6~7시간이다. 이렇게 끓인 육수는 고추장 양념을 넣고 칼칼하게 만든다. 국수는 밀가루 면을 쓴다.

육수를 먹기 위해 만든 국수니 사람들은 국물을 남김없이 마신다. 비린내가 난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비법이라면 생선 가시가 흐물거릴 정도로 오랜 시간 끓이는 것뿐이다. 서 할머니는 “오랫동안 끓이면 생선 가시에서도 구수한 맛이 우러나 비린내가 안 난다”고 했다.

생선국수 맛은 매운탕에 국수를 넣은 맛을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다르다. 밀가루 국수를 국물과 함께 삶아내 칼국수처럼 찐득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고추장 양념도 맵지 않다. 국물을 먹고 나서 속이 쓰리다는 사람이 없다. 손님들 모두 보약처럼 국물을 뱃속으로 들이붓는다.

팥칼국수

팥칼국수

충청도가 민물 생선으로 육수를 냈다면 전라도에서는 지천에 널린 팥으로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해 면식문화가 들어설 틈이 없던 전라도의 유일한 향토 국수다. 옛날 전라도에서 팥죽은 동짓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더운 날에도 뜨뜻미지근한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가정에서 잘 해먹는 음식이니 팥칼국수를 파는 가게도 만나기 어렵다. 전북 군산 신가네해물칼국수는 해물칼국수집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팥칼국수가 잘 팔리는 집이다. 해물칼국수를 먹으러 온 손님들도 기본으로 새알팥죽이나 팥칼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 나눠먹는다. 팥칼국수 맛은 팥죽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물은 팥죽처럼 걸쭉하고 달착지근하다. 신숙 사장은 “팥칼국수 만들기가 생각보다 번잡해 메뉴에 넣는 식당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일단 팥을 관리하기 힘들다. 중국산 팥은 방부제 처리가 돼 벌레가 먹지 않지만 국산 팥은 벌레가 쉽게 먹어 사용하기 어렵다. 중국산 팥은 단가도 싸고 관리도 쉽지만 쓴맛이 나 사용하지 않는다. 팥국물을 내기도 쉽지 않다. 팥칼국수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팥의 독성을 빼기 위해 애벌로 30분간 팥을 삶는다. 그 물을 버리고 다시 3시간 이상 솥에서 삶아 여러 번 체로 껍질을 걸러낸다. 그러면 팥이 앙금처럼 고와지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국수를 넣어 끓인다. 하루를 준비해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다.

팥칼국수만으로 장사를 하는 날도 있다. 동짓날이다. 겨울 동안 해가 가장 짧다는 겨울의 최정점인 동짓날은 팥죽 먹는 날이다. 지금도 전라도에서는 이 전통이 오래 지켜지고 있다.

돈코쓰 라멘보다 맛있다
고기국수

고기국수

제주도의 국수 역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길지 않다. 대대로 먹던 음식이라기보다는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가 되면서 생겨난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역사는 짧아도 제주 흑돼지, 제주 옥돔, 갈치회 등과 함께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불리는 국수가 있다. 고기국수다. 고기국수는 제주의 자랑, 돼지고기를 이용한다. 돼지뼈를 푹 고아 국물을 내는데, 이때 잡내 없이 우려내는 것이 기술이다. 소면보다 굵고 칼국수보다 가느다란 면발은 국물에 착 감긴다. 비계와 살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돼지 편육을 듬뿍 넣고 파·참깨·고춧가루를 살살 뿌려주면 국수가 완성된다. 돼지뼈를 이용해 만든 일본의 ‘돈코츠 라멘’이 떠오르는데, 그보다 더 깔끔하고 매력적인 맛이다.

고기국수는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경조사 때 손님에게 국수를 대접해온 전통이 낳은 향토 음식이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도 명절 때면 ‘괸당’(친인척을 뜻하는 제주말)을 찾아 마을을 돈다. 푸근하면서 보수적이다. 고기국수는 그러한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제주의 돼지 맛, 제주의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면 고기국수를 추천한다. 제주시 연동의 올레국수가 제주 사람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도리뱅뱅이(왼쪽), 삼색만두(오른쪽).

도리뱅뱅이(왼쪽), 삼색만두(오른쪽).


충청·전라도 국수와 함께 먹는 요리
고소한 도리뱅뱅이·시원한 물김치·든든한 삼색만두

충북 옥천 선광집에서는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을 판다. 둘 다 피라미로 만든 음식이다. 도리뱅뱅이는 대멸치 크기의 피라미로 만든다. 프라이팬에 피라미를 동그랗게 뱅뱅 돌려놓았다고 해서 도리뱅뱅이다. 피라미는 일단 튀겨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올려 준비해둔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튀긴 피라미에 고추장 양념을 바르고 기름을 살짝 둘러 한 번 더 구워낸다. 생선튀김은 도리뱅뱅이용보다 큰 피라미를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튀겨낸 것이다.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 모두 뼈째 그대로 씹어먹어도 입안에 가시가 걸리지 않는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고추장 양념이 된 도리뱅뱅이는 매콤달콤한 맛이 추가된다. 도리뱅뱅이 위에는 고추와 마늘, 채 썬 깻잎을 고명처럼 올려준다.
전북 군산 신가네해물칼국수집에서는 팥칼국수와 함께 전라도 말로 ‘신건지’라고 부르는 물김치를 낸다. 먹다 보면 다소 텁텁해지는 팥칼국수의 목넘김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삼색만두도 맛이 제대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천마·당근·시금치로 고운 색을 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돼지 등심 살코기와 두부로 만든 만두는 부드럽게 씹히면서 속을 든든하게 해준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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