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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정치인 위에 나는 국민

등록 2010-06-09 23:36 수정 2020-05-03 04:26
〈시티홀〉 SBS 제공

〈시티홀〉 SBS 제공

연식이 좀 된 컴퓨터 오락 중에 ‘심시티’라는 것이 있다. 발전소, 수도시설, 학교, 소방서, 경찰서, 병원 등을 잘 지어 인구를 늘리고 대기오염 등을 막아 주민의 ‘입지희망도’ 또는 ‘행복도’를 높이는 시뮬레이션이다. 요즈음 아이폰 유저를 빠른 속도로 중독시키고 있다는 ‘위룰’(We Rule)도 비슷한 유형이(라고 한)다(2G폰을 들고 다니는 주제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 이런 게임이 유행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답답함과 지겨움에 “내가 정치해도 그거보다는 낫다” “이렇게 좀 정치해보자”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심시티나 위룰의 드라마 버전으로는 (2009)이 있다. 등 ‘연인’ 시리즈로 유명한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 에서 “시청률보다 작품성, 멜로보다는 메시지” 있는 드라마를 쓰려는 인기작가(송윤아가 연기한 서영은 작가)를 그린 다음, 실제로 바로 다음해 ‘지방자치’를 소재로 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김선아·차승원의 달달한 러브 라인이나 정계 실력자의 숨겨진 아들과 간교한 재벌 딸처럼 전통적인 드라마 소재도 있었지만, 이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커피나 타던 시청 10급 공무원 여주인공이 ‘농번기 급식 도우미’나 ‘농기계 무료 임대’ 같은 공약으로 시장이 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애쓰는 모습을 그리는 데 공을 들였고, 그래서 거의 비슷한 시기 무상급식 예산이 삭감되는 어려움을 겪던 교육감의 고생에 빗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인시위 달걀 세례나 밤하늘에 그리는 도시의 청사진처럼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고, “쉽게 중독되지만 거품이 많을수록 커피 양은 적다”는 ‘커피와 정치의 공통점’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대사도 회자됐다. 팬클럽 회원들이 “조국(남자 주인공 이름)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구호를 줄여 연호했던 ‘조무영’은 그해 봄 있었던 갑작스러운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말장난이었다. 극 초반 “실제 공무원들이랑 똑같다”며 혀를 내두르게 했던 뻔뻔하고 간사하던 세 국장들이 조금씩 변해 ‘진짜 공무원’이 돼가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인지 희화해 보여주는 능력에 감탄했다.

현실이 가장 드라마 같다는 말처럼 엎치락뒤치락 극적이었던 개표의 밤도 지났다. 그 결과야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의뭉스레 있다가 뒤통수 친 ‘뛰는 정치인 위 나는 국민’ 덕에 유쾌한 아침이다. 당선자님들, 그 선택의 의미를 알고 마음이 무거우신가? (제발 그랬으면.) 신미래 시장처럼 소박한 약속이면 충분하다. “봄마다 보도블록 새로 깔지 않겠다, 쓸데없는 다리는 놓지 않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 하겠다고 한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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