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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만화가, 의외의 사생활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 & 무>
등록 2010-04-09 19:16 수정 2020-05-03 04:26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 & 무〉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 & 무〉

이토 준지. 그 이름만 들어도 축축한 달팽이가 목덜미를 덮쳐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게 나뿐일까? 기이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꼬인 뒤 자신을 토막내 죽이게 만드는 , 사람들을 뱅글뱅글 동심원의 집착 속에 빠뜨리는 …. 그는 지난 10여 년간 호러 만화와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데리고 온 녀석들은 뭔가 다르다. “온다… 이제 곧… 놈이 우리 집에… 그 저주의 얼굴을 가진 고양이 ‘욘’이….”

(대원씨아이 펴냄)는 만화가가 약혼자와 동거에 들어가며 키우게 된 두 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등에 해골 무늬가 있고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걸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고양이들이다. 그렇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게 문제다. 이토 준지는 이 고양이와의 만남을 특유의 호러풍으로 능청스럽게 풀어나간다. 마감에 지쳐 퀭한 눈으로 복도로 나온 만화가 앞에 나타난 거대한 민달팽이. 알고 보면 두 다리를 발밑에 깔고 길게 늘어진 고양이다. 그 녀석이 조금 빠른 속도로 복도를 기어갈 뿐인데 괴기스러운 뱀의 모습으로 착각한다.

만화가는 이렇듯 고양이와의 만남이 어색하지만, 점차 이 생명체들을 향해 진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방식조차 굴절돼 있다. 고양이들은 두 마리 모두 약혼자였다가 부인이 된 A코에게만 달라붙어 있는데, 그 모습을 방문 틈으로 몰래 훔쳐본다. A코가 가짜 낚싯대로 고양이와 놀아주자 자기도 흔들어보는데, 고양이들은 그 우둔한 움직임에 꼼짝도 않는다. 비뚤어진 애정에 질투심으로 부인을 바라보는 음침한 다크서클. 이 진지함이 재미있다. 결국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데, 그 모습조차 딱 그답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살인귀와 같은 핏줄 선명한 눈빛을 하고선 “요놈 콱 깨물어버린다”며 주둥이를 쭈욱 내밀어 고양이를 쭉쭉 빨면서 온 방을 뒹군다.

호러 만화가라면 당연히 음침한 골방에 혼자 살면서 시체 해부도나 들여다보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예상을 깨는 평범한 일상이 끝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여쭙겠소! J 선생’ 코너에서는 편집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생활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뜻밖이다. 지방 도시의 마을에서 반상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토 준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란하게 살고 있는데, 바쁠 때는 이 어머니가 그의 끔찍스러운 만화의 먹칠을 도와준단다.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공포와 웃음은 습자지 한 장 차이다. 이토 준지가 납작 엎드려야 하는 일본 호러의 원점, 우메즈 가즈오의 작품 세계가 그걸 모두 보여주었다. 이토 준지는 그 표현법을 현대적 방식으로 패러디한다. 만화가가 신이 나서 긴 팔을 뒤흔든다든지, 온 가족이 꾸부정한 허리로 밥을 먹는다든지 하는 장면들을 들여다보는 독자의 반응은 양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웃기거나 무섭거나.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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