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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어떻게 상품이 되었는가

승무원·추심원 등 극단의 감정노동자 살핀 역저,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
등록 2010-02-10 16:02 수정 2020-05-03 04:25
〈감정노동〉

〈감정노동〉

‘까다로운 윈딕시(미국 남동부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 점원 덕에 1달러를 버는 방법’.

“윈딕시 매장에서는 최근 계산대의 점원들이 유니폼에 1달러짜리 지폐를 꽂고 있다. 친절 캠페인의 일환이다. 만약 그 점원이 고객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거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면, 고객이 1달러를 가져가게 되어 있다. 또한 가게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빼앗긴 점원은 결국 상사의 잔소리를 듣게 된다.”

의 원제는 ‘관리되는 마음’(The Managed Heart)이다. 초판은 1983년에 나왔다. 한국어판 제목 ‘감정노동’은 이 책의 대중적·학술적 가치를 오롯이 살려내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감정노동’이란 개념을 지난 30여 년간 생산·유통·소비시킨 ‘살아 있는 고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러셀 혹실드는 델타항공의 임원과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인터뷰와 참여 관찰을 했다. 또 채권추심원을 포함해 다양한 직업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 책에 함께 모았다.

사적 차원에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질 또는 인간적 특성으로만 여겨지던 감정은 어떻게 시장에 ‘상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순수한 개인적 행위였던 감정노동은 사회적인 감정 법칙을 따라 사적·공적 생활에서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교환된다. 기업의 이윤 논리에 따라 감정이 관리·통제되면서 감정노동자 본인과 그 감정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미묘한 갈등 상황에 들어서게 된다. 친절과 미소라는 가면 뒤에서 감정을 상품으로 판다는 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미소를 둘러싼 전쟁

“마치 비행기 객실이 자기 집 거실인 것처럼 행동하라. 승객을 마치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있는 개인적인 손님인 것처럼 생각하라. 한없는 미소와 친철! 승무원 여러분은 델타를 광고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을 광고하는 겁니다.”(델타항공의 승무원 지침) “저를 날려주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이상은 내셔널항공 광고 카피) 회사는 남성 승객을 성적으로 살짝 흥분시키는 것이 비행에 관한 공포를 떨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내셔널항공 승무원)

“승객이 항상 옳은 건 아니겠지만, 승객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구호 속에 감정을 관리당해온 승무원 중 일부는 가끔 못된 승객에게 한 방 먹이는 방식으로 달콤살벌한 복수를 꾀하기도 한다. “미소는, 회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회사는 늘어나는 승객 앞에서 더 많이, 더 진심으로 웃을 것을 권고한다. 승무원들은 이런 독촉에 태업으로 대응한다. 덜 환하게 웃고 금방 미소를 거두며 눈빛을 반짝이지도 않음으로써 회사의 메시지를 흐린다. 미소를 둘러싼 전쟁이다.” “제가 웃지 않으면 승객들은 제가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웃지 않는다고 화가 난 건 아니거든요. 저는 그냥 안 웃을 뿐이죠.”

반면 채권 추심원들은 온갖 우거지상을 하고 명령조로 목소리를 높이는 감정노동을 요구받는다. “우리(추심원들)가 너무 친절하게 굴면 고객들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집니다.”

스트레스 원인으로 고려한 적 없던 노동

항공기 승무원과 추심원의 감정노동은 양극단을 이룬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노동자에게는 자기 직업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저자는 감정노동이 사회계층 전반에 걸쳐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로 이야기를 점차 확장한다. “승무원과 추심원이라는 두 극단의 직업 사이에는 감정노동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한다.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거의 인정받지도 못하고, 존중하지도 못하며, 고용주들이 업무상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고려한 적도 거의 없다시피 한 업무 차원(감정노동)을 경험하고 있다. 위계적으로 통제받고 있는 감정노동자 덕분에 공적 생활 속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날마나 완전히 모르거나 또는 거의 모르는 사람들을 믿고 즐겁게 거래하고 있다.” 이 책은 노동이나 페미니스트 관점을 넘어 휴머니스트의 눈길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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