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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빼곤 다 있어요”

직장인 밴드 잭밴드
등록 2010-02-03 15:50 수정 2020-05-03 04:25

“잭밴드요? 실력 빼고 다 있습니다. 밴드지만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면 대충 설명이 될까요?”
물류회사를 운영하며 직장인 밴드 ‘잭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는 김삼모(42)씨는 매주 금요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 있는 연습실에서 멤버들과 연습한다.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날이다. 무역회사, 방송사 직원, 회원권 딜러, 29~42살의 다양한 직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모인다. 이 생활이 7년째. 그동안 멤버가 계속 바뀌었지만, 드러머와 함께 꿋꿋이 잭밴드를 지키고 있다.

직장인 밴드 잭밴드. 잭밴드 제공

직장인 밴드 잭밴드. 잭밴드 제공

직장인 밴드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술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김삼모씨. 좋아하는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라이브 무대가 있는 바에 단골이 되었다. 사장과 친해지고, 슬슬 다른 단골과도 친해졌다. 어느 날, 단골 바에서 다른 단골들과 (그 이전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합석해 술을 마시다가 밴드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즉흥적으로 팀이 만들어졌다. 마침 마시고 있던 술이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스. 이름은 잭밴드로 하자, 일은 그리 되었다.

각자 다룰 줄 아는 악기를 하나씩 맡았고, 베이스 기타가 남았다. 멤버들이 말했다. “그럼 그건 삼모씨가 해.” 그렇게 생전 만져보지도 않은 베이스 기타를 덜컥 잡았다. 그렇다고 맹 음치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사내 녀석이 무슨 피아노냐”는 집안 반대에 부딪혀 대신 기타를 배웠다. 통기타를 오래 쳐서 그런지 베이스 기타는 금세 손에 익었다. “처음엔 겁이 없었죠. 그런데 몇 년을 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멤버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틈틈이 연습합니다. 지난해에는 거금을 들여 개인 레슨도 받았어요. 할수록 욕심이 생기는 게 좋습니다.”

잭밴드의 주 레퍼토리는 브릿팝 계열. 오아시스나 그린데이의 음악을 좋아한다. 연습곡은 모든 멤버가 자유롭게 추천하고, 일정 수 이상 동의를 얻어 결정한다. 결정되면 싫어도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시작해보면 연주 가능한 곡이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곡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이 모였기 때문에 한계가 있죠. 그래도 주변의 많은 직장인 밴드 중 우리만큼 오래된 밴드도 드문 것 같아요. 그만큼 실력도 늘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지난해 여름, 밴드 창단 6년 만에 첫 단독 공연을 했다. “공연 시작하기 직전, 불 꺼진 어두운 무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꽉 잡아주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우린 함께 이 자리에 섰구나, 이 사람들이 나에게 힘을 주는구나… 아, 밴드 하길 잘했다, 느낀 순간이었다.

김삼모씨의 꿈은 잭밴드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의 김철수 CEO가 멤버였는데,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분 영정 앞에서 약속드렸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헤븐 밴드를 같이 하자고. 저는 그때까지 멤버들과 함께 실력을 키우면서 잭밴드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게 밴드 활동하는 목표이자 이유예요.”

그는 이번 금요일에도 세상의 술은 다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로 꾸역꾸역 홍대 앞 유흥가로 몰려나온 인파를 뚫고 연습실로 향한다. “직장인 밴드는 밥이니까.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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