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와영희 펴냄)에서 이갑용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의의는 새벽 출근이 사라지고 주말 잔업, 철야·특근이 없어지고 마음과 몸에 여유가 많아지는 것”이라며 “임금 상승에 따른 노동자의 높은 구매력이 문화·연예 산업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해고자,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 동구청장을 지내고, 지금 다시 해고자 신세인 이갑용이 노동운동을 하면서 직접 겪은 일과 사람에 대해 기록한 ‘후일담’이다.
“평가에 혹독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그는 팔자 탓인지 민주노총 위원장 때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때도, 울산 동구청장 때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비타협적 투쟁, 날 선 비판, 원칙주의자 같은 말이 항상 그의 주변에 따라다녔기 때문일까.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의 전사’로 불리는 그는 책날개에서 “권력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민주노총의 정파 조직들을 혹독히 비판한 대가로 나는 별명처럼 ‘외로운 늑대’로 살고 있다. 외롭지만, ‘유연한 좌파’나 ‘부드러운 직선’보다, 그냥 ‘좌파’와 ‘직선’인 삶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알 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짐작하듯이 민주노총 안의 ‘숨은 관료 권력들’, 특히 이른바 ‘우파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활동가들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나는 실명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가를 혹독하게 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의 미래는 없다. 개인이 아닌 공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이므로 상대방이 반박을 해주면 풍부한 논쟁이 될 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 그렇게 그는 “독한 소리 잘하고, 싫은 소리만 골라 하는 ‘왕따’”가 되었다.
“서울 중앙에 운동의 뿌리도 없고, 지하 조직에서 학습을 시켜준 학생운동 출신 선배도 없고, 내 정책을 만들어줄 연구소니 뭐니 하는 연줄도 하나 없이, 아는 사람이라곤 해고자 몇 명이 전부인” 그는 1998년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알 만한 사람들이 모여 작당하고 후보군을 뽑아 품평하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섭외해서 ‘세워지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감옥에 가는 투쟁을 하겠다’고 나선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약어)이 뽑힌 것이다. 모두 입으로는 문제라고 얘기하면서도 결국에는 조직의 보위를 위해, 정파의 득세를 위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잘못을 덮어두는 일이 반복되면서 작은 일들이 점점 큰일로 쌓여가게 되었다.
그때 민주노총의 비리를 더 철저하게 파헤쳐야 했는데, 그때 단식투쟁이나 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됐는데…. 책은 가슴속에 후회로 요동치는 ‘수많은 그때’를 기록하고 있다. “그때(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꽃놀이패를 쥐고도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 때문에.” 그가 스위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국내에 있던 민주노총 간부 몇몇이 이미 판을 총파업이 아닌 단식투쟁으로 만들어버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울산) 촌에서 올라와서 X도 모르면서 까부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인데 우리가 욕해서 되느냐”고 말한 민주노총 우파 권력들의 이름도 거명된다.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로얄호텔 커피숍에서 은밀히 만나 총파업을 접으라고 공갈·협박하는 노회한 산별·연맹 대표자들도 등장한다. “지난 10년간 조직을 팔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품으로 날아간 우리 안의 박쥐들이 대부분 벽제파(민주노총 고위간부 중심의 우파조직) 소속이라는 걸 다 알면서도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민주노총 내부에 대해 싸우는 이것이 내가 민주노총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외로운 늑대는 다윗이 되고 싶다배포가 이 정도는 돼야 걸출한 노동운동가라 부를 수 있을까. “김대중 정권 시절 정치권 고위관료들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한번 만나려고 여러 선을 통해 접근해왔다.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들의 대통령이므로 정권의 대통령과 대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권위가 아니라 조직의 권위를 지키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적어도 정부와 상대할 때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아무나 만나주지 않았다.” 아무리 단련된 싸움꾼 이갑용이라도 외로운 늑대로만 불리는 건 원치 않는 모양이다. “이제는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되고 싶다. 더 이상은 외롭고 싶지도 않다. 여럿이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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