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이라는 신조어가 떠돈다. 한 번도 뜻을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듣는 순간, ‘아 그런 맛?’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맛이라는 게 전해들어 알 수 있나? 이나 에서 ‘귀에 불꽃이 터지고 전두엽이 녹아내리는 맛’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아도, 직접 혀에 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 그러나 ‘병맛’만큼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 이거였구나’ 하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말년’ 덕분이다.
야후에 1년 가까이 둥지를 틀다, 이제 네이버에도 오르게 된 만화가 이말년의 ‘이말년 시리즈’. 별 차이도 없는 만화를 양쪽 사이트에 올리는 것도 그렇고, 새 연재를 위해 재충전한다며 성의 없는 멘트를 올려놓은 것도 병맛이다. 하지만 어쩌랴? 웃기니까 용서해줘야지. 세상의 병맛들을 이렇게 달콤하고 정이 가게 만들어놓은 것도 다 그의 재주이니까.
개그 만화들이 발로 그린 듯한 낙서체로 바뀐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말년 시리즈’는 발 중에서도 제일 힘없는 왼쪽 새끼발가락으로 그린 것 같다. 내용도 해적·삼국지·학교 등 중구난방의 소재를 어처구니없는 전개로 펼쳐내더니, 기승전결의 맥락도 없이 뚝 하고 끝낸다. 만화를 소개하는 카피로 ‘당신의 개그 패턴을 파악했다.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뻥치지 마세요’다. 여기에 무슨 패턴이 있나? 무맥락, 무의미, 무패턴, 무데뽀, 무책임…. 한마디로 예측 불가의 니힐리스틱한 상황이 우리를 부들부들 떨게 한다.
가끔은 제법 질감이 꽉 찬 풍자로 독자를 놀라게 한다. ‘굼벵이 캠프’ 편에서는 굼벵이가 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지상으로 나가 짝짓기를 하는 걸 군대 생활에 빗대고 있다. 기상나팔이 불면 굼벵이 된 지 2년 밖에 안 된 막내가 7년차 말년 병장에게 ‘번데기까지 17일 남았습니다’라고 알려준다. 그러더니 “굼벵이처럼 왜 이렇게 굼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라며 속담을 묘하게 틀어 군 생활을 묘사한다. 솔직히 저런 개그 누구나 한 번쯤 날려보았을 듯싶은데, 이말년의 허술한 그림과 어울려 발작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웹툰이니만큼 독자와의 교감도 왕성하다. ‘열혈장수촌-촌장선거 공방전’에서는 “설마 억겁촌 마을 주민 전원이 출마한 거 아녀?”라는 댓글이 달리니, 만화 주인공들이 “이제 독자들도 이 만화의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어” “이말년 백수 되는 날도 머지않았군”이라는 대화를 나눈다.
세상에 웰메이드가 너무 많다. 영화도 드라마도 스토리 만화도 치밀한 조사, 탄탄한 각본, 빼어난 영상미로 팬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웰메이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다. 모두에게 완벽 스펙의 ‘엄친아’ ‘엄친딸’이 되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이런 허술한 ‘병맛’에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번 연말에는 어딘가 뜨끈한 화롯불 앞에서 이 만화를 붙들고 앉아, 사탄이 지옥불 앞에서 바르는 선크림을 처덕처덕 발라보고 싶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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