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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만들어준 ‘얼치기 가족’


산신령 외모에 소심한 내면의 윌름을 중심으로 ‘다국적 가족’이 꾸려지는데…
등록 2009-11-27 14:15 수정 2020-05-03 04:25

같은 길을 걸으며 부대끼니 순례자끼리 끈끈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헐렁한 사람들하고 각별하게 엮여 나중엔 유사 가족같이 됐다. 자기 집에서부터 3개월 넘게 걸어 산신령 몰골인 벨기에인 윌름(53)이 아빠, 그의 오랜 친구 얀(52)이 엄마, 나와 똥 단어 수집 전문가 이스라엘 여자 아디, 그리고 외모는 공주지만 내면은 무수리인 네덜란드 여자 엘리가 세 딸, 불곰의 몸집에 아기 종달새의 마음을 지닌 캐나다인 블레어가 아들이었다.

몰리나세카 마을에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우리 ‘가족’. ‘아빠’라 불리는 윌름과 ‘딸’인 엘리. 김소민

몰리나세카 마을에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우리 ‘가족’. ‘아빠’라 불리는 윌름과 ‘딸’인 엘리. 김소민

막판엔 윌름을 실제로 ‘아빠’라고 불렀다. 세상의 욕망을 초연한 분위기라 처음엔 기죽었다. 그 앞에서 나만 속물 같았다. 순례 시작 뒤 첫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는 바람에 엮였다. 할 말이 없어 “왜 걷냐” 물었더니 유럽 68세대 정서부터 훑었다. 젊은 시절 신은 없다 믿었는데 다시 찾고 싶어졌다는 둥, 아내랑 3개월 정도 각자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는 둥 걷는 이유를 5가지로 나눠 길게도 설명했다. 별 이유 없이 걷는 나만 생각 없어 보였다. 두 번째 봤을 때 그는 바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싼 밥집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그는 “나는 새처럼 자유롭지”라고 여유롭게 말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새면 벌써 산티아고 갔지. 네 몰골을 보라고”라고 농담했는데, 그는 뜨악하게 한참 쳐다봤다. 저질 개그 한 죗값으로 그 자리에서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장해제하게 된 것은 그가 외모만 신선인 걸 안 뒤부터였다. 20km를 기어 도착한 마을 어귀 공원에서 얀과 순례자 한두 명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윌름이 보이지 않기에 물었다. “걔? 알베르게 방 찾으러 벌써 갔지. 내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데도 걷는 내내 ‘침대 없으면 어쩌냐. 나쁜 자리 주면 어쩌냐’ 만날 초조해하거든.” 뭐야 새라더니….

그 뒤 그와 둘이 걸은 적이 있는데 갈림길에서 순례자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가 안 보일 때마다 초록색 눈엔 불안이 한가득 넘실거렸다. 안내책자를 뒤지다가 나한테 물어볼 사람을 찾아보라고 재촉했다. 행인이 안 보이자 허겁지겁 양쪽 길을 뛰어다녔다. 뭐야 자유롭다며….

하루는 그가 의기양양하게 10유로를 벌었다고 떠벌렸다. 큰 성당 앞에 서 있는데 선지자급 포스에 혹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단다. 농담으로 모델값을 내라고 했더니 내놓더라는 거다. 나는 그를 좀 막 대할 수 있게 됐다.

그를 ‘아빠’라고 말하게 된 계기는 누군가 엘리와 그가 부녀지간이냐고 물은 뒤부터였다. 엘리가 딸이면 나도 딸이다, 그리 풀렸던 거 같은데 마음 편하게 ‘아빠’라 부를 수 있게 된 건 또 한참 지나서였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그는 “가정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부인이 돈을 버는 동안 그는 살림을 도맡아 두 아들을 키웠다.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두 아들은 성인이 됐고 그의 창고엔 팔리지 않는 그림이 쌓였다. 돌보고 가꿀 대상을 잃어가는 윌름의 불안을 엿본 뒤, 우스개처럼 엘리와 나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길 위의 5~6월, 흐느적거리는 나른한 오후의 풍경 속엔 그들이 있었다. 몰리나세카 마을에 다다르자마자 땀내 풍기는 우리는 강으로 기어들어갔다. 특히 불곰 블레어에게 동네 아이들이 달려들어 물로 공격을 퍼부었다. 짝사랑하는 한국인 여자에게 고백하겠다며 노래 한 가락만 알려달라 부탁하기에 를 가르쳐줬더니 를 교향곡처럼 분석하며 연습에 몰두한 그, ‘깡충깡충’이라는 힘겨운 발음에 좌절하던 그, 그렇게 앙증맞은 불곰 블레어는 아이들의 공격에 호통 한번 못 치고 줄행랑을 쳤다. 그를 놀려먹고 느린 걸음으로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서 다른 순례자를 만난 윌름은 자기가 집에서부터 걷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엘리는 “나 저 이야기 몇 번 들었는지 아냐”고 푸념하고, 아디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게 가족의 숙명이야”라고 달랬다. 어스름에 내가 찻길에서 어슬렁거리자 윌름이 소리쳤다. “조심해야지.”

누가 알았겠나. 이 이방인들이 가족같이 느껴질 줄…. 서울에서 알 수 없는 길은 두려움이었다. 헛디디면, 벗어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거 같았다. 그런데 이방인끼리 시시덕거리며 서로 물집을 터트려주다 보니, 사는 게 바다 같아 긴장 풀고 한번 떠 있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누군가 꺼지도록 내버려둘 만큼 우리 그렇게 차가운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김소민 기자 한겨레 편집팀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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