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걸으며 부대끼니 순례자끼리 끈끈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헐렁한 사람들하고 각별하게 엮여 나중엔 유사 가족같이 됐다. 자기 집에서부터 3개월 넘게 걸어 산신령 몰골인 벨기에인 윌름(53)이 아빠, 그의 오랜 친구 얀(52)이 엄마, 나와 똥 단어 수집 전문가 이스라엘 여자 아디, 그리고 외모는 공주지만 내면은 무수리인 네덜란드 여자 엘리가 세 딸, 불곰의 몸집에 아기 종달새의 마음을 지닌 캐나다인 블레어가 아들이었다.
막판엔 윌름을 실제로 ‘아빠’라고 불렀다. 세상의 욕망을 초연한 분위기라 처음엔 기죽었다. 그 앞에서 나만 속물 같았다. 순례 시작 뒤 첫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는 바람에 엮였다. 할 말이 없어 “왜 걷냐” 물었더니 유럽 68세대 정서부터 훑었다. 젊은 시절 신은 없다 믿었는데 다시 찾고 싶어졌다는 둥, 아내랑 3개월 정도 각자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는 둥 걷는 이유를 5가지로 나눠 길게도 설명했다. 별 이유 없이 걷는 나만 생각 없어 보였다. 두 번째 봤을 때 그는 바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싼 밥집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그는 “나는 새처럼 자유롭지”라고 여유롭게 말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새면 벌써 산티아고 갔지. 네 몰골을 보라고”라고 농담했는데, 그는 뜨악하게 한참 쳐다봤다. 저질 개그 한 죗값으로 그 자리에서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장해제하게 된 것은 그가 외모만 신선인 걸 안 뒤부터였다. 20km를 기어 도착한 마을 어귀 공원에서 얀과 순례자 한두 명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윌름이 보이지 않기에 물었다. “걔? 알베르게 방 찾으러 벌써 갔지. 내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데도 걷는 내내 ‘침대 없으면 어쩌냐. 나쁜 자리 주면 어쩌냐’ 만날 초조해하거든.” 뭐야 새라더니….
그 뒤 그와 둘이 걸은 적이 있는데 갈림길에서 순례자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가 안 보일 때마다 초록색 눈엔 불안이 한가득 넘실거렸다. 안내책자를 뒤지다가 나한테 물어볼 사람을 찾아보라고 재촉했다. 행인이 안 보이자 허겁지겁 양쪽 길을 뛰어다녔다. 뭐야 자유롭다며….
하루는 그가 의기양양하게 10유로를 벌었다고 떠벌렸다. 큰 성당 앞에 서 있는데 선지자급 포스에 혹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단다. 농담으로 모델값을 내라고 했더니 내놓더라는 거다. 나는 그를 좀 막 대할 수 있게 됐다.
그를 ‘아빠’라고 말하게 된 계기는 누군가 엘리와 그가 부녀지간이냐고 물은 뒤부터였다. 엘리가 딸이면 나도 딸이다, 그리 풀렸던 거 같은데 마음 편하게 ‘아빠’라 부를 수 있게 된 건 또 한참 지나서였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그는 “가정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부인이 돈을 버는 동안 그는 살림을 도맡아 두 아들을 키웠다.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두 아들은 성인이 됐고 그의 창고엔 팔리지 않는 그림이 쌓였다. 돌보고 가꿀 대상을 잃어가는 윌름의 불안을 엿본 뒤, 우스개처럼 엘리와 나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길 위의 5~6월, 흐느적거리는 나른한 오후의 풍경 속엔 그들이 있었다. 몰리나세카 마을에 다다르자마자 땀내 풍기는 우리는 강으로 기어들어갔다. 특히 불곰 블레어에게 동네 아이들이 달려들어 물로 공격을 퍼부었다. 짝사랑하는 한국인 여자에게 고백하겠다며 노래 한 가락만 알려달라 부탁하기에 를 가르쳐줬더니 를 교향곡처럼 분석하며 연습에 몰두한 그, ‘깡충깡충’이라는 힘겨운 발음에 좌절하던 그, 그렇게 앙증맞은 불곰 블레어는 아이들의 공격에 호통 한번 못 치고 줄행랑을 쳤다. 그를 놀려먹고 느린 걸음으로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서 다른 순례자를 만난 윌름은 자기가 집에서부터 걷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엘리는 “나 저 이야기 몇 번 들었는지 아냐”고 푸념하고, 아디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게 가족의 숙명이야”라고 달랬다. 어스름에 내가 찻길에서 어슬렁거리자 윌름이 소리쳤다. “조심해야지.”
누가 알았겠나. 이 이방인들이 가족같이 느껴질 줄…. 서울에서 알 수 없는 길은 두려움이었다. 헛디디면, 벗어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거 같았다. 그런데 이방인끼리 시시덕거리며 서로 물집을 터트려주다 보니, 사는 게 바다 같아 긴장 풀고 한번 떠 있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누군가 꺼지도록 내버려둘 만큼 우리 그렇게 차가운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김소민 기자 한겨레 편집팀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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