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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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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하는 순례자들


처음엔 진지하던 이들이 걸을수록 어린아이처럼 앙탈 부리거나
사소한 것에 희열 느끼는 존재로 변해가
등록 2009-11-11 13:41 수정 2020-05-03 04:25
퇴행하는 순례자들. 김소민

퇴행하는 순례자들. 김소민

별일 없이 걷는 ‘카미노’에서 순례자들이 욕심부리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스탬프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협회사무소에서 ‘크레덴시알’이라는 일종의 순례자용 여권을 받아야 한다. 알베르게나 바에서 스탬프를 크레덴시알에 받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날 사무소에 보여주면 ‘카미노’를 걸었다는 증명서를 내준다. 모양이 제각각인 스탬프를 모으는 게 은근히 중독성이 강했다. 40~50대 중년들이 스탬프 하나 더 받겠다고 헉헉거리며 바마다 꼬박꼬박 들러 주섬주섬 가방을 풀어헤쳤다. 한 한국인 순례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하나 파갔는데, 인기가 폭발해 서로 찍어달라고 난리였다고 한다. 남들 없는 스탬프가 있거나, 더 많으면 꽤 뿌듯하다.

별 머리 쓸 일 없는 순례자들은 퇴행했다. 흰머리 흩날리는 40대 독일인 베른트도 그랬다. 처음엔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국의 외교정책, 이란의 이번 선거 전망 등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다. 외국인 앞에서 민간 외교관임을 잊지 말라는 교육에 세뇌돼 자동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않았다면, 내가 모두 못 들은 척 씹었을 질문들이다.

그랬던 그도 안타깝게 외양은 그대로 둔 채 정신세계에서만 시간을 거꾸로 살기 시작했다. 순례를 시작하고 10일 정도 지나 끝 간 데 없이 밀밭과 태양밖에 없는 메세타에 들어서자 그는 루이 암스트롱의 를 바꿔 부르며 자신의 천재성에 대놓고 감탄했다. “푸른 나무와 붉은 장미를 보았지. 나는 독백했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대신 “푸른 하늘과 붉은 흙뿐이지. 나는 독백했지, 이 망할 놈의 메세타”라고 부르고는 자랑스러워했다.

또 한 주쯤 지난 뒤 만난 그는 상태가 더 심각해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설 때마다 어릴 때 본 서부극 흉내를 냈다. 급기야 물통을 권총인 척 뽑아들었다. 혼자 놀면 좋은데 옆에 걷던 사람한테도 꼭 동시에 물통을 꺼내먹고 서부 총잡이 동지(!)들끼리 하는 손 암호를 따라 하자고 꾀었다. 가방은 무겁고 태양은 뜨거워 죽겠는데 물병 빼먹는 것도 신경 써야 하나? 대충 맞춰주다 박자를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물병을 빼야 한다며 앙탈을 부렸다. 그 뒤 그는 거의 짐승 수준으로 퇴행했다. 대화하기 귀찮아 돌 같은 걸 발로 차면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돌을 마구 쫓아가기도 했다. 카미노를 걷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더니 저렇게 갓난아기 시절까지 찍고 새 출발을 하게 되나 보다.

말쑥한 정동희(38)씨와 박혜수(23)씨도 그리 예외는 아니었다. 문어 요리 ‘뽈뽀’로 유명한 스페인 멜리다를 통과하는 날, 1~2유로에도 수전증을 느끼던 우리는 큰마음을 먹었다. 문어를 삶아 올리브기름과 함께 내는 요리 뽈뽀를 셋이 걸신 들린 거같이 집어삼켰다. 그런데 3인분을 시킨 우리보다 2인분을 시킨 옆자리 접시가 더 푸짐해 보였다. 억울해진 우리는 1인분씩 세 번 시켜먹을 걸 그랬다고 계속 투덜거렸다. 그래도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게눈 감추듯 먹어젖히는 식성에 놀랐던지 정신 놓은 종업원이 그만 2인분만 계산해버렸다. 정씨는 “야 빨리 나가, 빨리”라고 속삭였고 우리는 레스토랑 문을 빠져나가자마자 달려 동네 놀이터에 널브러졌다. ‘거지 삼형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놀이터에서 근육통약을 발라가며 뽈뽀집 탈출 성공 무용담을 나눴다. 거금 6유로(약 1만원)를 아끼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이후 정씨도 점점 해맑아지거나 아기처럼 짓궂어져만 갔다. 공립이란 뜻의 ‘무니씨발’만 들으면 무슨 욕을 상상했는지 혼자 사고 치고 안 들킨 애처럼 좋아했다. 나중에 그는 아무 일 없이도 난데없이 낄낄거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진짜 신바람 나는 순간은 어른인 척 안 해도 되는 때인 거 같다. 하루 걷기를 마치고 할 일 없는 몇몇 순례자들이 시골동네 작은 놀이터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네를 타는데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내 신발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안 돼”라고 소리치자 상대는 더 의기양양해졌다. 나도 그네에서 내려 복수했다. 노을이 지는 하늘 높이 신발들이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한 마리 짐승이나 아이가 되는 사치를 누렸다.

김소민 기자 한겨레 지역팀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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