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장벽에 뚫린 튼실한 개구멍이 바로 인류 공통 소재 ‘똥’이다. 잘산다고 황금똥 싸나, 똑똑하다고 복잡한 똥 싸나? 네 똥이 내 똥, 거기서 거기니, 걷는 내내 이보다 더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도 없었다. 비슷한 처지의 순례자끼리 예의는 5분 정도만 차리면 된다. 그 뒤 어색한 침묵이 밀려올 때마다 똥은 알뜰한 구명보트가 돼주었다.
이스라엘 여자 아디(24)는 스스럼없어 보였다. 알베르게에서 몇몇 순례자가 기타 치고 노래하니 거기 맞춰 춤을 췄다. 나를 주눅들게 하는 1469가지 가운데 56번째 유형이었다. 그런 그와 처음 대화를 나눈 건 아침 식사 자리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으로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아디는 나에게 결정적 질문을 날렸다. “네 나라 말로는 똥을 뭐라 그래?” 입에 문 빵가루를 튀겨가며 서로 똥 발음을 맹렬히 연습하니 ‘사랑한다’ ‘행복하다’ 따위를 배울 때와는 다른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 뒤 아디와 나는 여러 나라 말로 똥이 뭔지 수집했다. 독일어로는 짧고 굵게 ‘자이셰’, 이스라엘어로는 목구멍을 대장인 양 긁듯 ‘하하’, 프랑스어로는 변비처럼 발음을 뱉어내기 어려운 ‘메르드르’…. 나중에는 다른 순례자들이 배워와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아디에게 똥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문명의 굴레, 습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아무도 없는 곳이라도 자연 속에서는 똥을 누지 못했다. 오줌까지는 어떻게 후딱 해치우는데 똥은 영 자신이 없었다. 하늘과 밀밭만 지평선까지 이어진 메세타 지역을 걷다 보면 17km 동안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다. 그 중간에 똥이 마려우면 그런 고문이 따로 없다. 바를 보자마자 주인장이 뭐라 그러건 말건 화장실로 뛰어들어가기 일쑤였다. 이를 듣고 아디는 말했다. “왜 밖에서 똥을 못 눠. 얼마나 엉덩이가 시원하고 좋은데. 나한테는 ‘카미노’(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길) 전체가 거대한 화장실이야.” 그 뒤 이 순례길에서 성취하고픈 내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밖에서 진정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똥 누기가 됐다.
후미진 곳에는 사람 똥이 소심하게 자리잡고, 순례길 복판에는 짐승 똥이 당당하게 흩뿌려져 있다. 토끼 똥같이 생긴 동글동글하고 작은 똥 한 무더기를 길 한복판에서 발견할 때마다 몇몇 순례자들은 비슷한 대화를 지칠 줄 모르고 이어갔다. “토끼들, 여기서 회의라도 연 거야? 대체 왜 길 한복판에서 똥을 눴을까? 숲에서 누면 안전할 텐데. 불안하지 않을까?” “원래 사람도 긴장하면 오줌이 마렵지 않아? 똥도 긴장하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아니야. 저 풀을 다 밀어내면 길과 숲 속에서 똥은 같은 밀도를 보일지 몰라. 다만 풀에 가려 안 보이는 거지. 토끼는 길이건 숲이건 안 가리겠지.” 몇몇은 토끼 똥처럼 보이는 이 똥들의 증거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똥 소재는 마르지 않으니, 토끼 똥의 흔적이 끝나갈 즈음 스페인의 북서쪽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면 소똥의 해방구가 펼쳐진다.
똥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나마 있던 체면이 쑥 빠져나가면서 쾌변의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거의 다들 똥 이야기를 은근히 즐겼다.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겨우 추접스러운 우스개 하나 준비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곰이 옆자리 토끼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혹시 당신의 몸에 똥이 묻는다면 당신 기분이 어떨까요?” 토끼는 “기분은 나쁘지만 견딜 수는 있겠지요”라고 답했다. 곰은 토끼로 자기 ‘똥꼬’를 닦았다. 미국인 레이철은 얼굴이 뻘게지도록 웃으며 자기도 꼭 한번 토끼로 똥꼬를 닦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영국인 던컨은 사뭇 진지하게 왜 한국 토끼들은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느냐고 물었다.
하여간 누구나 공평하게 지닌 한 줄기 똥덩어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때로 웃음을 끌어냈다. 자기 집부터 시작해 3개월째 걷고 있어 모습은 거의 선지자급인 벨기에인 윌름은 ‘까까벨로스’라는 마을까지 걷던 날, 하루 종일 혼자 키득거렸다. “별 더러운 동네 이름 다 봤네. ‘까까’는 네덜란드 아이들 말로 똥이야.”
김소민 기자 한겨레 지역팀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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