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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말해도 모른다


스페인어로만 말하는 프란의 생존법, 네덜란드어와 스페인어의 싸움법, ‘오역의 흐름’ 대화법
등록 2009-10-29 10:53 수정 2020-05-03 04:25
스페인 사람 프란시스코는 스페인 땅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몇몇 순례자들은 말 안 통하고 속 터지게 하는 사람에게 “너 그러다 프란 된다”는 말로 애정 섞인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김소민

스페인 사람 프란시스코는 스페인 땅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몇몇 순례자들은 말 안 통하고 속 터지게 하는 사람에게 “너 그러다 프란 된다”는 말로 애정 섞인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 김소민

스페인 사람 프란시스코(23)의 커다란 초록빛 눈망울은 항상 소통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프란시스코, 프란, 프란”이라고 되풀이했다. 쉽게 ‘프란’이라고 줄여 부르라는 거다. 이름만 쉬우면 뭐하나 그 뒤 “어디서 왔느냐”라는 질문에 답 비슷한 걸 얻어내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하지만 끝내 그가 정확히 어느 지방 출신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손짓 발짓을 동원하고 나무막대를 찾아내 바닥에 집 모양을 그려넣어도 프란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스페인어로 통신을 시도했다.

스페인 땅에서 스페인 사람 프란은 순례자 가운데 정보가 가장 부족했다. 어리바리 그를 보면 ‘밥은 먹고 다니나’ 걱정이 앞섰다. 통역을 수배해 숙소 알베르게에서 멍하게 시간을 때우는 그와 아주 중요한 대화를 시도했다. “프란, 여기서 아침밥 먹을 수 있는 거 알아?” 역시 프란은 “그런 것도 있었느냐”며 깜짝 놀랐다. 다른 한국인 순례자는 좋은 곳 놔두고 시설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알베르게로 꾸역꾸역 들어가려는 프란을 끄집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날, 다정하나 가공할 만한 답답증을 유발하는 그가 깰세라 꼭두새벽에 출발했건만 먼발치에서 날 발견한 그는 냉큼 달려왔다. 화장실을 가겠으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듯 그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찔러댄 뒤 자리를 떠나자마자 나는 그만 다가올 ‘대화 노동’에 대한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내빼고 말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프란.” 이후 몇몇 순례자들은 말 안 통하고 속 터지게 하는 사람에게 “너 그러다 프란 된다”는 말로 애정 섞인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 소통의 순수한 열망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덕분에 프란은 순례자들이 공짜로 차려준 밥상에서 꽤 여러 번 포식했다.

말이 안 통해도 싸움은 가능하다. 작은 마을 토산토스에는 토굴 속에 지은 성당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아끼는 곳이었다. 검은색 치마를 엄숙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스페인 여성 인솔자를 쫓아 미국인·벨기에인·스페인인·이스라엘인 등 오합지졸 순례자들이 어리둥절 동산을 올랐다. 신앙심 깊어 보이는 인솔자는 “포토, 노”를 단호하게 외친 뒤 스페인어로 침 튀기도록 열정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모두 ‘뭔 소리야’라는 듯 멍청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무리 가운데 스페인 사람에게 물어보니 스페인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설명해줬다. 그 자리, 사실은 사라지고 온갖 언어 속에 요란스런 추측만 난무했다. 그러다 벨기에 사람 얀(52)이 사고를 쳤다. 자기보다 한참 작은 이스라엘 여자 뒤에 숨어 사진을 찍다가 된통 걸린 것이다. 열받은 인솔자는 고상한 분위기를 삽시간에 벗어던지고 광란의 스페인어로 쉴 새 없이 쏘아대며 사진기를 손으로 내려쳤다. 말썽을 피운 장본인인데다 뭔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도 얀은 억울했던지 큰 소리로 반격에 나섰는데 이번엔 천둥 같은 네덜란드어다. 서로 삿대질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는 상황이 쭉 이어졌다. 웃어야 할지 진지해야 할지 헷갈리던 나머지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자 얀도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분이 안 풀린 인솔자는 그 불경스런 외국인들 전체를 한 명씩 가리키며 비난했다. 당황한 미국인 레이철은 인솔자가 알 수 없는 영어로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라고 변명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등 뒤에서는 욕설로 추정되는 말이 이어졌다. 역시 어딜 가나 싸움은 말의 내용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목청의 세기로 하는 거다.

말이 안 통해 되레 대화가 끊이지 않을 때도 있다. 길에서 만난 독일인 베른트와 저질 영어 대화를 이어가는데 처음엔 문법을 챙기다 나중엔 아무렇게나 말하게 됐다. 대화는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오역의 흐름을 따랐다. “너 때문에 내 그래머(문법)가 더 엉망이 됐어.” “뭐? 네 그랜마(그랜드마더·할머니)가 어떻다고? 너도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구나. 우리 할머니는 말이지….” 나는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던 그의 할머니 인생에 대해 들었다. 어느 산으로 오르게 될지 모르는 기묘한 대화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방향을 전환해가며 제 갈 길을 오래 이어갔다.

김소민 기자 한겨레 지역팀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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