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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가학 풀세트

<개그콘서트> ‘풀옵션’
등록 2009-11-05 14:41 수정 2020-05-03 04:25
<개그콘서트> ‘풀옵션’. 사진 KBS 제공

<개그콘서트> ‘풀옵션’. 사진 KBS 제공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집에 안 들어오는 주인님요.” “시계야 시계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착하니?” “집에 들어와서 조용히 잠만 자는 주인님요.” “비데야 비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더럽니?” “제가 뱉은 물을 저한테 다시 뿌리는 주인님요.” 의 새 코너 ‘풀옵션’이 시끄럽다. 출연자들의 푸념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괴로운 비명이 커질수록 방청객의 웃음소리도 커져가는 건 왜일까?

달인 행각의 달인 김병만이 “이거 굉장히 아이디어적”이라며 제안한 코너에 들어선 동료 개그맨들. 이상하게 표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대사가 없는 것에 익숙하고 집에서 혼자 있는 게 더 힘들었다는 정명훈만이 벙글거리고, 김대희는 나이가 많다고 슬쩍 빠지려 하고, 류담은 쪼그려앉아 있는 게 힘드니 빨리 시작하자고 재촉한다.

‘풀옵션’은 인공이 아닌 천연 지능과 생체 감각을 갖춘 가구들로 세팅된 안방과 사무실이다. 이 최첨단 가구들은 주인이 무엇을 찾든지 그 물건으로 변신한다. 문제는 인간의 몸뚱이 그대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의자를 찾으면 두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벌렁 뒤집어져야 한다. 여행가방을 찾으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쪼그려앉아야 한다. 그 정도면 양반이다. 10년 묵은 이불, 업무용 화이트보드, 심지어 지문 인식 금고까지 만들어낸다. 애꿎은 시계 역할의 김지환은 코너의 처음부터 끝까지 똑딱똑딱.

참 기발하다. 젖꼭지 버튼으로 누르는 인간 비데는 물 뿌림 기능과 말리는 기능까지 갖추었고, 비누는 얼굴인 비눗갑을 열면 나오는 혀로 대신한다. 그러나 꼭 신기하고 기똥차서 웃는 것만은 아니다. 이 물건들을 만들어내려 애쓰는 개그맨들의 생고생이 커질수록, ‘인간’ 역할의 출연자가 ‘사물’ 역할의 출연자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수록 반응은 커진다. 이 몹쓸 놈의 주인은 창틀을 연기하기 위해 김병만이 물구나무서서 쫙 벌린 다리를 보더니, “여보, 창틀의 이 먼지 좀 봐”라며 손가락으로 다리 안쪽을 훑는데 방청객이 자지러진다.

여러모로 의 과거 인기 코너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이든 설정하는 대로 연기해야 하는 ‘착한 사람만 보여요’, 다른 한편으로는 출연자들을 신체의 극한까지 몰고 간 ‘마빡이’가 생각난다. 몸을 이용하지만 그냥 즉자적인 몸 개그가 아니라, 그 몸을 상상 못한 방향으로 변형시켜나가는 ‘신체를 이용한 사물 개그’가 이 코너의 포인트. 김병만의 말처럼 ‘아이디어적’이지만, 몸을 괴롭히는 아이디어가 커질수록 이 코너의 자극은 커진다.

사물 역할을 맡은 개그맨들의 개성이 다채로운 점도 흥미롭다. 비대한 몸집 때문에 제일 힘들어하는 류담은 꽉 찬 쓰레기봉투 역할이 제격, 운동 능력이 좋은 김병만은 무엇이든 만능이다. 게다가 각각의 고유색이 있어서 ‘하얀’ ‘빨간’ 어쩌고 소리만 나오면 움찔한다. 그나저나 출연 개그맨들은 꼭 신종 플루 검진을 받은 뒤에 참가해야겠다. 서로 간에 신체 내용물의 교환이 너무 빈번히 이루어진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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